최근 서브컬처 오픈월드 RPG 시장은 그야말로 포화 상태라는 표현조차도 부족한 ‘블러드 오션’에 이르렀다. 저마다의 매력 포인트와 기존 클리셰들을 비틀어 ‘자신만의 특징’을 어필하는 신작이 쏟아지는 시장이 된 만큼, 기존 흥행작들과의 차별화를 이뤄내지 못하면 살아남기 힘든 것이 냉혹한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벽람항로'의 개발사 만쥬게임즈가 개발하고 넥슨이 국내 서비스를 준비 중인 ‘아주르 프로밀리아’의 CBT가 5월 15일부터 18일까지 나흘간 진행됐다. 베일에 싸여 있던 ‘아주르 프로밀리아’는 단순히 넓은 필드를 모험하며 재화를 모으고 캐릭터들을 육성해 보스 레이드에 도전하는 흔한 오픈월드에 그치지 않고, 특색 있는 동반자 '키보'를 핵심이자 전면에 내세우면서 자신만의 확실한 색을 증명해 내는데 성공했다.
정통 판타지 스타일의 비주얼, 그 자체로 차별점
게임에 접속하자마자 눈을 사로잡는 것은 한 편의 웰메이드 애니메이션을 감상하는 듯한 화사하고 따뜻한 색감의 그래픽이다. 최근 서브컬처 시장의 트렌드와 비교했을 때 ‘아주르 프로밀리아’가 선택한 룩앤필은 대단히 영리한 포지셔닝으로 생각된다.
최근 정식 출시 되었거나 한창 개발 중인 기대작들이 현대, 어반, 아포칼립스, 심지어 빅토리아 풍이나 테크, ~펑크 소재와 배경을 선택하고 있는 것과 달리 ‘아주르 프로밀리아’는 따뜻하면서 밝고 희망찬 정통 판타지 특유의 비주얼 감성을 선택했다. 물론 비슷한 룩앤필을 보유한 게임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 시장에 존재하는 트렌드를 고려하면 평화롭고 아름다운 판타지 대자연의 풍경은 그 자체로 차별점이자 돌파구가 될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 더해 만쥬게임즈 특유의 비주얼이 한층 더 빛을 발한다. 전작 '벽람항로'를 통해 입증된 캐릭터 메이킹 노하우가 3D 모델링에 고스란히 녹아들었는데, 아담하고 귀여운 스타일부터 각선미가 살아 있는 슬렌더 스타일, 글래머러스한 체형에 이르기까지 유저들의 광범위한 취향 스펙트럼을 정밀하게 타격하는 다채로운 캐릭터 디자인이 인상적이다. 특히 이용자의 분신이 되는 ‘성림자’의 경우 캐릭터 디자인이 매우 매력적으로 잘 만들어졌고, 머리색이나 스타킹의 데니아, 성별을 포함해 약간이나마 커스터마이징을 지원하는 점이 꽤 만족스러웠다.
캐릭터 디자인을 뒷받침하는 모델링의 마감 퀄리티는 약간의 개선이 필요하기는 하나 준수한 편이며, 메인 스토리 컷신에서의 풍부한 표정 변화와 풀 보이스 더빙이 몰입감을 더한다. 다만 이번 CBT 기준으로는 특정 챕터까지만 풀 보이스가 적용되어 있었고, 한국어 풀 더빙의 경우 지원이 공식 발표 되었으나 이번 CBT에서는 직접 경험해 볼 수 없었다.
포토모드의 경우에도 시간, 바람의 방향과 세기, 스포트라이트 조명, 편집을 위한 그린스크린, 각종 캐릭터 세팅 등 다방면으로 지원되는 기능이 많기 때문에 ‘가지고 놀 수 있는 시스템’으로 상당히 만족스럽게 느껴졌다.
정통 판타지 비주얼로 즐기는 탐험, 그리고 왕도적인 스토리
월드 탐험 과정은 친절하고 밀도 있게 구성되어 있다. 단순히 맵의 크기만 키워둔 것이 아니라 필드 곳곳에 수집, 채광, 벌목, 미니게임 등이 촘촘하게 배치되어 필드를 탐험하는 재미를 제공한다. 흔히 레벨 디자인을 위해 사용되고 있는 벽을 직접 기어오르는 기능은 존재하지 않지만 2단 점프, 다양한 이동 기믹, 탈것이 이를 보완해주기 때문에 이동에 있어서는 큰 피로감 없이 탐험할 수 있다.
이러한 비주얼을 그대로 반영하듯 스토리 전개 또한 왕도에 가깝다. 몰입감이 매우 뛰어나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그렇다고 너무 완성도가 부족하지도 않은 평균적인 수준이다. 만화적인 연출도 종종 활용하는데 크게 유치하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대체로 서브컬처 게임들이 초기 버전에서부터 매우 뛰어난 스토리만으로 호평을 받는 경우가 흔치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충분히 개선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또 한 가지 오해하면 안 되는 것이, 스토리가 평이하다고 해서 캐릭터들의 매력이나 이를 표현하는 방법까지도 평이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 만쥬게임즈 특유의 캐릭터 메이킹 노하우가 ‘아주르 프로밀리아’에는 매우 잘 녹아들어 있는데, 단순히 외형뿐만 아니라 더빙으로 표현되는 각 캐릭터들의 성격, 컷씬에서의 모션과 표정 등이 꽤 자연스럽고 완성도가 높아 매력을 한층 더 잘 어필하는 강점이 있다. 한국어 풀 더빙 지원이 확정되었는데, 서브컬처 팬들에게 익숙할 일본어 더빙 외에 한국어 더빙으로 스토리를 감상하는 것도 또 하나의 색다른 경험이 되지 않을까 싶다.
‘아주르 프로밀리아’의 알파이자 오메가, '키보'
‘아주르 프로밀리아’를 다른 서브컬처 오픈월드 게임들과 구별 짓는 가장 강력한 핵심 콘텐츠는 파트너 생물인 '키보(Kibo)'다. 필드에 존재하는 수많은 키보들은 단순히 사냥의 대상이 아니라 직접 포획하고 교감할 수 있는 생태계의 주역이다. 키보는 단순히 외형이 귀여운 수집 요소에 머무르지 않으며, 게임의 여러 핵심 시스템들과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있어 깊은 애정으로 보살펴야 하는 소중한 동료로 기능한다.
앞서 언급한 정통 판타지 스타일, 즉 밝고 화사한 비주얼 기조는 게임의 핵심인 '키보'의 디자인으로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게임을 플레이하는 내내 키보와 동행하며 늘 시야에 두어야 하는 만큼 유저가 거부감 없이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친근하고 부담 없는 외형이 필수적인데, 아주르 프로밀리아의 키보들은 전체적인 룩앤필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면서도 저마다 귀엽고 멋지게 표현되어 시각적 만족감을 높인다. 항상 함께하는 동반자인 만큼 당연히 갖춰야 할 기본적이면서도 까다로운 조건들을 훌륭하게 충족시켰다는 점에서 비주얼적인 면은 충분히 만족스럽다.
또 키보의 수집과 육성 시스템을 깊이 있게 뜯어보면 제작진이 세부 규칙과 시스템 설계에 심혈을 기울였음을 알 수 있다. 필드에서 발견한 키보는 체력을 낮추거나 또는 곧바로 '스타링크 카드'를 사용해 획득할 수 있다. CBT 기준 존재하는 키보는 약 190여 종 가까이 되며, 수집 마니아층을 다분히 노린 듯한 '이로치가이(성능에 차이는 없으나 색이 다른 개체)'가 존재하기도 한다. 여기에 더해 스킬 등의 요소들이 획득 시 무작위로 결정되기 때문에 원하는 종결 옵션을 얻기 위한 반복적 파밍 요소 등 수집형 게임으로서의 든든한 기반도 마련되어 있다. 이렇게 포획한 키보는 3단계 진화를 통해 외형, 능력치가 변화해 육성의 재미까지 함께 잡았다.
이렇게 든든하게 성장한 키보는 단순히 뒤를 따라다니는 관상용 펫에 그치지 않고, 필드 탐험의 동반자로서 필드 곳곳에 배치된 환경 퍼즐을 풀거나 기믹을 해결하는 열쇠가 된다. 특히 키보 중 일부는 이동을 보조하는 탈것으로 사용할 수 있어 넓은 필드를 탐험하는 속도와 편의성을 대폭 높인다.
뻔한 오픈월드 RPG를 거부하는 아이덴티티
나아가 하우징 영역인 영지 시스템에서 키보들의 진가가 제대로 발휘된다. 키보들은 재배, 물 주기, 수확, 벌목, 채광 등 저마다 고유한 생산 작업 특성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들을 영지 내 적재적소에 배치하면 자원 채집부터 장비 제작에 이르기까지 플레이어가 직접 진행하기 번거로운 노동을 스스로 대행하고, 각종 생산성 보너스 혜택까지 더해져 활용 가치는 무궁무진하다. 이 대목에서 많은 이용자들이 화제작 '팰월드'를 연상하게 되는데, 실제로 플레이 해본 결과로도 해당 장르의 매력적인 자동화 시스템이 서브컬처 오픈월드라는 틀에 조화롭고 자연스럽게 이식되었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키보를 활용한 대전 콘텐츠 ‘키보 배틀’도 마련돼 있다. 키보로 덱을 구성해 상대방과 겨루는 일종의 오토배틀러 공성 게임으로, 인게임 시스템과의 연계(NPC와의 대전, 서브 퀘스트 등) 및 전략적인 재미를 위해 여러 방면으로 신경 쓴 모습은 보이지만 이 콘텐츠가 많은 이들에게 소구되기는 어렵다고 느꼈다. 조금 더 직관적이고 빠르게 플레이 할 수 있도록 템포를 개선하거나, 혹은 과감하게 다른 콘텐츠로 대체하는 등 다듬는 과정이 필요해 보였다.
이렇듯 키보는 ‘아주르 프로밀리아’가 자칫 흔하고 뻔한 판타지 오픈월드 RPG가 되지 않도록 하는 핵심 기둥이자 이 게임만의 아이덴티티로 작동하고 있다. ‘포켓몬스터’나 ‘팰월드’와 같이 동료가 되어주는 파트너 생물들을 모으고 함께 모험하는 재미를 추구하는 이용자라면 ‘아주르 프로밀리아’에서의 경험은 매우 만족스러울 것이라고 감히 자신한다.
호쾌하고 빠른 템포가 강조된 3인 태그 전투
전투 시스템은 플레이어가 편성한 캐릭터 3인과 이들을 보조하며 동행하는 키보가 하나의 팀을 이루어 실시간으로 진행된다. 여타 오픈월드 RPG들과 유사한 3인 태그 전투인 만큼 크게 적응에 어렵지 않고, 브레이크나 패링, 회피 후 반격, 퇴각 시 발동되는 스킬 등의 시스템으로 익숙하면서도 호쾌한 액션을 경험할 수 있다. 회피와 가드(패링)은 스택을 소모하고, 쿨타임이 지나면 회복되는 방식이다.
특히 인상적인 지점은 전투에서 UI와 이펙트 덕분에 ‘그랑블루 판타지 리 링크’나 ‘파이널판타지’ 리메이크 작들과 같이 JRPG의 느낌을 많이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현재 시점에서 적의 공격 이펙트가 잘 보이지 않거나 이펙트가 너무 화려한 점, 공격 이펙트 후 실제 공격이 이루어지기 까지의 간격이 짧게 느껴지는 점, 회피와 패링의 이분화로 인한 조작의 어색함, SFX와 조작감이 가볍게 느껴지는 점 등 다소 아쉬운 지점도 있으나 CBT 이후 피드백을 통해 충분히 개선 가능한 것들로 느껴졌다. 만쥬게임즈의 대표작 ‘벽람항로’는 3D 액션이 아니었기에 본격적인 액션 게임 개발을 처음 시도해보는 것이었을 텐데, 그것을 감안하면 완성도가 상당히 뛰어난 편이라 놀라웠다.
서브컬처 오픈월드 게임 시장에 던진 따뜻한 판타지 감성의 도전장
CBT였던 만큼 향후 정식 서비스를 위해 보완해야 할 피드백도 명확하게 존재한다. 가장 먼저 불안정한 UI/UX와 편의성 영역에서의 개선이 시급해보였다. UI는 전반적으로 미적 측면에서 상당히 완성도가 뛰어나지만, 반대로 글씨의 폰트가 작거나 특정 메뉴를 찾아 들어갈 때 조작이 여러 번 요구되는 등 기능적 측면에서 약간의 아쉬움을 남긴다. 또 불필요하게 높은 난이도의 미니게임이나 다소 아쉬운 디테일의 배경 그래픽 등은 정식 출시 빌드에서 개선되기를 기대해 본다.
전반적으로 ‘아주르 프로밀리아’의 국내 첫 CBT는 대단히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평할 수 있다. 지나친 경쟁을 유도하는 콘텐츠나 피로감을 자극하는 무겁고 어두운 아포칼립스 세계관에서 탈피해, 아름답고 아기자기한 판타지 세계를 자유롭게 탐험하고 매력적인 키보들을 수집해 나만의 터전을 가꾸는 '힐링과 육성의 본질적인 즐거움'을 충실히 구현해 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전투, UI & UX 측면에서의 아쉬운 요소들을 면밀히 검토하고 반영한다면, 정식 출시 이후 시장에서 독보적인 감성을 지닌 웰메이드 '힐링 판타지 오픈월드 RPG'로 안착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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