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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를 죽인 범인을 15년 동안 기다렸던 한 소녀는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과정 속에서 스스로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프리드리히 니체의 말에 이렇게 반박하다. "신이 죽었기 때문에 괴물이 필요하다" 그리고 한마디를 덧붙인다. "악이 승리하기 위한 조건은 단 한 가지인 것 같아요. 선한 사람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소녀는 악의 승리를 막기 위해 자신을 내던진다. 괴물이 된 소녀는 처연(凄然)하게 괴물과 맞선다.
'널 기다리며'는 사적인 복수(復讐)를 소재로 삼고 있는 다른 영화들과 큰 차이가 없다. 기존의 영화들의 클리셰(clich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법(法)'은 '죗값'에 걸맞은 '벌(罰)'을 내리지 못하고, 공권력을 대표하는 경찰은 무능하고 허술하고 답답하다. 이쯤되면 사인(私人)들이 불신을 품는 것은 당연하고, 자구책(自救策)을 강구하는 것도 자연스러워 보인다.
상투적인 형식을 고스란히 답습하는 이 영화가 내세운 비장의 무기는 복수의 주체가 '소녀'라는 점이다. '소녀'가 누군가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복수를 이뤄내는 스토리는 약간의 차별성을 만들어낸다. 그 약간의 차별성을 과신한 것인지, 영화는 오로지 '소녀'에 집중한다. 그리하여 '소녀'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는 예의 바르고 착한 순둥이였다가 집에서 혼자가 된 순간부턴 분노와 광기에 가득 찬 극단적 캐릭터가 되었다.
어떻게 하면 더 '매력적'으로 그려낼 수 있을지에 천착한 탓에 어떻게 하면 더 '설득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지를 간과했거나 무시한 티가 역력하다. 순수한 모습과 괴물 같은 모습, 이 두 가지 양극의 모습을 연기할 '얼굴'로 심은경을 캐스팅한 건 적절한 것이었지만, 슬럼프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그의 작위적인 연기는 오히려 '몰입'을 방해한다.
'내일도 칸타빌레'를 통해 제대로 '홍역'을 치렀던 심은경은 '널 기다리며'를 통해 새로운 변신을 시도했지만, '써니'나 '수상한 그녀'에서 보여줬던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채 겉돈다는 느낌을 준다. 스릴러는 처음 도전했던 장르였던 만큼 어려움이 있었을 테고, 무엇보다 '희주'라는 캐릭터가 담고 있는 이중성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건 상당히 부담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오히려 돋보이는 건 싸이코패스 살인범 '기범'을 연기한 김성오였다. 무려 16kg이나 감량을 하는 등 캐릭터에 몰입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던 그는 캐릭터를 완벽하게 살려냈다. 뼈가 드러나 앙상한 몸을 압도하는 강렬한 눈빛은 관객들을 긴장시키는 '유일한' 요소였다. 그 외에 대영 역을 맡은 윤제문과 신참인 차형사 역을 맡은 안재홍 '죽은' 캐릭터 속에서 '평범한' 연기를 보이며 침몰한다.
기존의 (사적인) '복수'를 다뤘던 영화들이 '성인 남녀'를 통해 그 목적을 달성하려 했지만, '널 기다리며'는 '소녀'를 통해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전달하고자 애쓴다. 하지만 '이야기'의 부실함을 감추기에 '캐릭터'가 매력적이지도, '장면'들이 흥미롭지도 않기 때문에 '범작(凡作)'에 머물렀다. 특히 '사적인 복수'가 결국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로 향할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은 그다지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다.
'소녀'가 왜 '괴물'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설명이나 영화의 한 축이 되어야 할 '살인범(들)'에 대한 설명도 빈약하기 짝이 없다. 이제 '복수'를 소재로 영화를 만드려는 감독들도 고민을 통한 발전이 필요해보인다. '복수' 그 자체를 아주 기가 막히게 스크린에 구현하든지, '복수'에 대해 심층적이고 철학적인 고민을 담든지, 그 어느 것도 제대로 할 자신이 없다면 '그만둬야' 하지 않을까?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어 나타나야만 하는 '영화 속 현실'은 제법 씁쓸하다. 물론 그건 실제 현실을 어느 정도 반영한 것이리라. 영화 속만큼 '개차반'은 아니지만, '법'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공권력은 부실하다. 그렇다고 해서 '사적 복수'를 정당화하려는 생각을 키워가는 건 위험한 일이다. 법과 제도는 보완해 나가야 하는 것이지, 불만스럽다고 배제시켜선 곤란하다.
피해자를 위한 지원, 가해자에 대한 공정한 처벌. 이 두 가지 날개가 정상적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사회적 관심을 기울여야 '희주'가 스스로를 괴물로 만드는 일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니체의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과정 속에서 스스로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글 제공 : '버락킴 그리고 너의 길을 가라'의 블로그(http://wanderingpoet.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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