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제공: 알숑규의 버드나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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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말을 한 마디로 정의내릴 수 있다면, 그것은 단연 '오컬트'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음모론, 판타지, 세기말, 밀레니엄을 위시로 한 각종 콘텐츠들이 문화계를 장악했고 이들은 온갖 작품으로 쏟아져 나왔죠. 그 가운데 오늘 날까지도 적잖은 영향을 남긴 작품을 하나 꼽으라면 역시 'X 파일(The X-Files)'을 들 수 있을 겁니다. 93년부터 2002년까지 20th FOX에서 제작되고 방영된 이 작품은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고, '엑스파일'이라는 단어 자체를 '드러나지 않은 이면의 사실을 폭로하는 문서'류의 고유명사로 자리잡게 만드는데 일조했습니다.
이 작품의 장르는 대략 미스터리 공상과학(Mystery Sci-Fi)계열의 수사물에 가깝다 볼 수 있는데, 엑스파일의 새로운 시즌이 바로 내년 방영될 것으로 확정되어 많은 엑스필(X-Philes)들을 설레게 하고 있는 중입니다.
하지만 과연 최초 시즌이 방영된지 20년도 더 지난 이 작품이 과연 현 시점에서 얼마나 통할 수 있을까 궁금하신 분들도 많을 겁니다. 많은 시간이 흐른만큼 사람들이 선호하는 소재도 많이 바뀌었고, X파일 고유의 이야기 구성방식도 많이 소비되었으니까요. 그럼에도 저는 엑스파일이 가진 힘은 여전히 유효하다 단언하려 합니다. 이 작품이 기승전UFO로 흘러가는 와중에서도 '실화'를 기반으로 전개된 에피소드들이 최소한의 균형을 잡아주었거든요. 작중 주인공인 멀더조차 도 시전설 내지 음모론 추종자라며 "허무맹랑한 이야기에 휩쓸리는 사람은 바보"라는 식으로 매도되긴 했지만, 멀더의 주장 저 아래엔 실제로 벌어지거나 이후로도 되풀이 되는 현실의 사건들이 녹아 있었습니다.
시즌2. 에피소드3 '피의 경고'
엑스파일의 상징. 시즌2 세번째 에피소드 '피의 경고(Blood)'는 공인받지 않은 농약을 사용하는 바람에 사람들의 공포가 자극되고, 어떠한 계기로 살인마로 돌변해 버리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멀더는 그 계기가 다른 것이 아닌 전자기기에 표시되는 일정한 신호이며, 이 신호를 발신하는 것은 다른 게 아닌 '정부'라고 생각하죠. 스컬리는 '공포를 자극하는 물질'도 '정부의 실험'도 없다고 단언하지만, 멀더는 그럴수도 있다고 이야기하며 과거의 사건들을 이야기합니다.
'DDT'. 현재 선진국 사이에선 사용이 금지된 살충제로 발암 물질을 포함하고 있고 자연계에 막대한 피해를 끼치지만, 한 때 정부의 주도로 적극적으로 사용이 장려된 물질이기도 합니다. '결코 부작용이 없는 기적이 물질'이라는 극찬 아래 아이들의 맨살에 뿌려지기도 했을 정도였죠. 하지만 이후 DDT에 노출되었던 여성들이 단체로 유방암을 앓는 등의 사건들이 발생하여 정부가 공식적으로 사용을 금지할 것을 약속하였고, 즉시 발생하는 부작용 외에 장기적으로 예기치 않은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에까지 눈을 돌리게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평화로운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가가 '국민을 인체실험'한다는 것이 말도 안된다 여길 수도 있지만, 미국은 1930년대부터 70년대까지 40년에 걸쳐 흑인 빈민가 지역과 지적장애를 가진 이들에게 고의적으로 매독을 감염시켜 인체실험을 행한 바 있었습니다. 심지어 매독의 치료 방법까지 대중화되었음에도 의도적으로 매독 외의 질병은 치료시키면서 매독만은 치료하지 않는 식의 행태까지 벌였죠. 결국 이것이 공개되어 크게 비난받았고, 빌 클린턴 대통령은 97년 5월 백악관에서 이를 공식적으로 사과한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를 계기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느냐? 그건 알 수 없습니다. 왜냐면 빌 클린턴의 사과 이후, 2010년 국무장관 힐러리 클린턴과 오바마 대통령이 과테말라서 동일한 매독 감염 실험을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했기 때문이죠.
시즌2. 에피소드22 '죽음의 전염병'
시즌2 스물 두번째 에피소드 '죽음의 전염병(F. Emasculata)'은 제약회사에 의해 치명적인 질병에 감염된 죄수가 탈옥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멀더와 스컬리는 이 병에 대해 어느 정도 정보를 공개해야 하는가에 대해 설전을 벌이기도 하고, 이를 정부가 조장하거나 방조했다는 뉘앙스를 강하게 풍기기도 합니다. 그리고 스컬리는 최초 감염이 과학자와 동명이인인 죄수에게 간 '배달사고' 때문이었다 밝히기도 했죠.
지난 5월. 미군은 택배회사 페덱스를 통해 탄저균을 한국 내 주한미군 오산기지로 반입하는 쇼킹한 일을 저질렀습니다. 그것도 일반 화물로요. 페덱스 역시 이 사실이 밝혀진 이후 '탄저균인줄 알았다면 애초에 받지도 않았을 것이다'며 입장을 밝히기도 했죠. 대외적으로는 이러한 '배달사고'에 대해 사멸된 균을 들여놓는 것을 실수하여 생균을 들여놓았다 발표되었지만, 이것으로 실험까지 한 것이 알려지며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하였습니다.
'치명적인 질병'에 대한 정보 공개를 놓고 멀더와 스컬리의 담론은 지난 메르스 사태를 떠올리게 합니다. 감염 방식이나 경로는 확실하지만, 보고되지 않는 감염자의 이동으로 인해 사태는 겉잡을 수 없이 커질 우려를 낳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정보를 공공에 '언제' 그리고 '얼마나' 공개하는가인데, 멀더는 최대한 빠르게 공개를 해야 한다는 입장이면서도 이 정보 공개로 인해 벌어지는 '패닉이 더 큰 피해를 불러 올 수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못합니다.
시즌2. 에피소드13 '공포의 그림자'
이 두 사람없는 엑스파일은 앙꼬없는 찐빵이라죠.
시즌2 열 세 번째 에피소드 '공포의 그림자(Irresistible)'는 여타의 에피소드에 비하면 상당히 건조한 에피소드입니다. 여성의 머리카락과 시체애호증을 가진 정신질환자가 처음엔 시체를 탐닉하다, 이후 사람을 살인하고, 그 과정에서 스컬리까지 노리게 된다는 이야기죠.
실제로 이 에피소드는 UFO와 초자연현상을 다루지 않은 엑스파일의 몇 되지 않는 에피소드 가운데 하나이며, 이전까지 돌연변이에 유령과도 맞서 싸우던 스컬리가 이상할 정도로 나약한 모습을 보이는 에피소드기도 합니다.
이는 '현실'을 지독하게 반영한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성도착증에 의해 철저하게 약자를 노리는 '연쇄살인마'로 표상된 현실은 이 에피소드에서 상당히 충실하게 그려집니다. 비록 FBI 요원이라 할지라도 여성은 그러한 약자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다는 현실말입니다. 실제로 이 에피소드에서 묘사된 연쇄살인마 '도날드 패스터(Donald Pfaster)'는 이러한 장르의 바이블로 불리는 '알프레드 히치콕(Alfred Hitchcock)'의 1960년작 '싸이코(Psycho)' 속 '노먼 베이츠(Norman Bates)'를 떠올리게 합니다. 노먼 베이츠 역시 시체성애자이자 살인자로 유명한 '에디 게인'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캐릭터고요. 그만큼이나 이 에피소드 속 살인마는 '현실의 살인마'와 닮아 있고, '현실이 때론 가상보다 두려울 수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입증합니다.
이외에도 시즌2 24번째 에피소드 '도깨비불(Our Town)'은 '광우병'을 모티브로 제작된 에피소드입니다. 작중 멀더는 닭에게 닭을 갈아 만든 사료를 먹이는 장면을 보고 충격을 받는데, 이 모습은 딱 '소사료를 소고기로 만들다니'라며 충격받던 2000년대 전세계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그 확산 과정도 90년대 이론을 충실히 따랐었기에 이후 2000년대 논란이후의 전개과정과도 적잖이 닮아 있습니다.
이처럼 엑스파일은 당대 논란이 된 소재들을 (그 화법은 어쨌건) 전문성있게 다루어 냈기에 그와 관련된 사건들이나 전문용어가 유효하게 사용된 경우가 적잖습니다. 얼핏 허무맹랑해보이는 이야기들도 나름의 사실을 기반으로 하기에, 멀더와 스컬리 두 사람의 대립을 통한 각자의 해석이 의미를 가졌고, 이 해석들은 오늘 날 벌어지는 사건들에 대한 태도의 중요성과도 합치합니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처럼 엑스파일 속에는 여전히 현실이 녹아 있고, 그렇기에 엑스파일은 계속될 수 있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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