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으로 보는 전쟁의 역사. 진주만 기습전 2부

등록일 2010년10월05일 16시27분 트위터로 보내기


2부. 연합 함대의 출격

그리하여 11월 26일 시시마의 히타코푸만에서 나구모 제독이 이끄는 6척 항모가 일본을 떠났다. "니가타 산을 올라라." 12월 1일. 태평양 한가운데서 그들에게 내려온 전문. 그리하여 전쟁은 최종적으로 확정되었다. 공격 일자는 12월 7일. 더 이상 후퇴는 있을 수 없었다.

날씨조차 그들을 도와주고 있었다

12월 3일. 동경 170도 지점에서 해상 급유를 받은 그들은 나쁜 날씨와 안개의 도움을 받아 일본 어선 1척을 제외한 어떤 존재도 만나지 않고 무사히 전진, 7일 새벽 북방275해리, 북위 26도, 서경 158도의 비행 발진점에 도착했다. 자그마치 5000km이상의 거리를 지나 완벽한 기습 태세에 돌입한 것이다.

목표 도착. 전투의 시간이 다가왔다




충천한 사기. 그들은 역사의 순간이라 생각했다

* 역사의 갈림길? 7일 3시 40분



소형 잠항정을 발견한 구축함. 그러나, 이는 경보로 연결되지 않았다
오하우 남쪽에 포진한 잠수정. 그러나 그들은 살아남지 못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 공습은 완벽하기 이를데 없는 것이었지만, 사실 마지막 순간에 그 작전이 틀어질 우려가 있었다. 때문에, 기동 함대는 공격 전의 어떤 시점에서든 적에게 들키면 후퇴하도록 명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날씨와 운의 도움으로 목표에 정확히 도착할 수 있었던 기동 함대와는 달리, 정찰 및 지원 공격을 위해 출격했던 잠수함 부대는 그다지 운이 좋지 않았다. 30척의 이호 잠수함 중 5척에 실려 있던 소형의 특수 잠항정, 진주만으로 잠입하던 그들 중 하나가 7일 3:40 미해군 소해정 콘들에게 발견되고 구축함 워드의 폭뢰 공격을 받은 것이다(후일, 탐험가에 의해 조사되긴 했지만 그 종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적 잠수함 출현'. 이것은 진주만 전역에 비상을 걸기에 충분한 사건이었지만, 그들의 보고는 복잡한 체제 속에(무엇보다 구축함 함장이 초짜라는 이유로) 6시 40분이 되어서야 본부에 전달되었고, 결국 이는 기습을 막는데 큰 도움을 주지 않았다.

카미카제를 연상시키는 소형 잠수정. 하지만 별 활약을 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나머지 4척의 잠수정은 어떻게 되었을까? 결국 그들은 적의 공격으로 파괴되고 마지막 1척 마저도 해류에 밀려 나포되지만, 진주만의 수많은 사진 중, 잠수정에서 발사했을 것으로 생각되는 어뢰의 흔적을 통해서 그들이 무용으로 끝나지만은 않았으리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이것은 가능한 모든 것을 동원하고자 한 야마모토의 노고에서 나온 것이지만, 이 선택은 그다지 옳았다고 할 수 없다. 운이 좋지 않았다면 이로서 작전은 실패하고 말았을 것이다.

12월 6일 일본은 마지막 통첩을 위한 전문을 발송했다. 13개항을 먼저 발송하고 14항은 남겨둔 채로…(그러나 이런 조치로 인해 대사관 측의 작업이 늦어졌고, 결국 선전포고는 공격 후에야 전달될 수 있었다) 한편, 그 무렵 미국 정보부에서는 일본에서 남쪽으로 출격시킨 수송함의 종적을 추적하고 일본의 침공이 임박했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주말인데다 늦은 시간, 모처럼의 정보는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결정은 늦어지고 만다. 그리고 진주만에서는 모처럼의 토요일 주말을 맞이하여 흥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드디어, 7일 6:00. 좋지 않은 날씨 속에서도 항공기는 출격했다. 러일전쟁 당시 동해 해전에서 도고 제독이 계양했던 역사적인 Z 신호기를 뒤로 하고...

토요일 저녁. 사람들은 흥겹게 놀고 있었다. 그들의 노래 소리를 적군이 듣고 있다는 것을 모른 채




최종 선언. 등반이 시작되었다


일본군의 출격. 지금 전투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도라! 도라! 도라!

진주만의 포진. 운이 좋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1차 부대는 전투기 43대, 뇌격기 40대, 급강하 폭격기 51대, 대형 폭격기 41대.
한편, 아침 4시부터 작동을 시작한 진주만의 레이더는 그들을 향해 접근하는 대량의 항공기들을 발견했지만, 경험이 부족한 판독관은 이를 잘못 생각했고 상관은 B17 편대라 생각하고 무시함으로서 마지막 경고의 가능성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B17 편대. 이로 인해 일본군의 공세는 예측되지 못했다

그리고, 워싱턴의 아침. 일본의 14번째 전문이 도달했다. 12월 7일 정확히 1시. 전문. 다시 말해 선전 포고를 전달하라는 메시지가…(그러나, 여러 문제로 인해 마지막 전문은 11시에야 도착하고 말았다)

일본의 내각에서는 정상 회담에 대한 제안을 묵살했다

일요일 아침. 평소처럼 한가한 시간을 보내던 워싱턴에서 정보부만이 빠르게 움직이며 정보를 쏟아내었다. 일본이 전쟁을 벌인다는 것이 확인되면서 각지에 정보가 전달되었지만, 날씨가 좋지 않았기에 하와이에는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으며, 결국 진주만의 상황이 끝난 이후에야 전보로서 도달되었다.





도라!도라!도라! 기습은 완전 성공했다

그리고 7시 50분. 짙은 구름으로 고생하면서도 일본의 항공기들은 하와이 상공에 도착했다.(마침 진주만에서는 그곳으로 향하던 B17을 유도하기 위해 방송을 밤새 틀어주고 있었는데, 짙은 구름으로 목표를 찾기 어려웠던 일본군에 있어 그것이 등대와도 같은 역할을 해주었다는 설도 있다). 때맞추어 맑은 날씨가 그들을 맞이했고, 조용한 진주만에 폭음이 울려퍼졌다. 8시를 맞이하여 국기 계양식과 군악단의 연주가 시작되는 상황에서 폭탄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뒤늦게 선원들과 장교들이 이리저리 뛰기 시작하고 폭탄과 어뢰가 수없이 쏟아지는 상황에서도 소총 한발 발사되지 않는 황당한 상황.



이정도로 바보 같은 기습은 역사상 존재치 않았을 것이다






수라장 속에…
파리처럼 많은 일본기 중. 이렇게 서로 부딪친 일은 없다
뇌격기. 그 시선의 끝에 전함이 보인다

당시 생존자의 표현대로 '돌을 던지면 맞을 정도로 낮게 날아다니는' 일본 항공기의 공습에서 수분, 주력함 대부분은 이미 심각한 피해를 입고 있었고, 그 무렵, 하와이의 비행장에서는 급강하 폭격기와 전투기의 공습으로 처참한 피해를 맛보고 있었다. 사보타지를 예상하여 밀집되어 있던 항공기들은 한 대도 출격하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전투기의 참상. 뒤늦게 이륙하려는 전투기는 그대로 가라앉았다
그들에겐 거의 반격도 존재치 않았다

1차 공격대가 거의 공격을 끝낼 무렵에서야 비로소 대공포대가 활동을 시작하지만, 제1차 공격대는 전투기 3기, 뇌격기 5기, 급강하 폭격기 1기라는 매우 경미한 피해를 보았을 뿐 아무런 문제없이 이탈했다. (공격 와중에 툴랜드 대령이 이끄는 B17 편대가 진주만에 도착했지만, 연료도 무기도 없는 채 공격당하고 불과 일부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

식사 도중에야 소식을 들은 조종사들. 이미 진주만은 화염에 물들어 있었다


웨스트버지니아의 취사병, 도리 밀러. 훈련조차 못 받은 그가 선장을 구하고 기관총으로 적기를 2대나 격추시켰다


애리조나. 망루 바로 위에 폭탄을 얻어맞은 이 함은 비운의 함으로 기록되었다


폭발하는 애리조나. 순식간에 기울어져 가라앉았고 그대로 관이 되었다
제 2차 공격 경로. 그러나 미군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8:15. 2차 공격대가 진주만에 들어섰을 때 4척의 전함이 가라앉고 있었고, 3척은 파손된 상황이었다. 2차 공격대가 유일하게 살아남은 캘리포니아에 쇄도하는 가운데, 전투기와 폭격기들은 살아남은 미군기의 공격에 나섰다. 하지만, 1차 공격대가 물러난 후 겨우 출격하여 대기하고 있던 P-40 2대의 반격으로 수대의 급강하 폭격기가 격추되었다(영화 <진주만>, <토라!토라!토라!> 등에서 주역이라 할 수 있는 주역들의 활약은 바로 이기들을 모델로 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활약도 잠시, 호위를 맡고 있던 제로기가 돌입하여 벌어진 공중전에서 -영화와는 달리- 이들은 모두 격추되어 사라지고 말았다.

용감한 조종사. 하지만, 실제로는 둘다 살아남지 못했다
이렇듯 처참한 상황이 전개되었다

일본군은 수로를 향해 나아가고 있던 전함 네바다에 공격을 집중시켰다. 만일 이 함이 수로 한가운데서 침몰한다면 항구는 무용지물이 될 것이었다. 그러나, 선장의 침착한 지휘 아래 네바다는 결국 호스피탈 포인트라는 지점으로 대피할 수 있었다. 그리고, 10:00 일본군은 드디어 항모로 돌아갔다. 제 2차 공격대가 돌아설 무렵. 진주만에는 목표라 할 것이 남아 있지 못했다. 제 2차 공격대는 대공포화와 소수의 전투기에 의해 전투기 6기, 급강하 폭격기 14기를 잃었지만 역시 피해는 경미했고, 나구모 제독은 3차 공격을 진언하는 장교들의 의견을 거절하고 재빨리 침로를 돌려 벗어났다.

이는 항모라는 1차 목표를 발견하지 못한 상황에서, 무엇보다도 함대에 대한 반격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서 취할 수 있었던 최적의 전술적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파괴할 수도 있었던 연료 탱크를 파괴하지 못했고, 무엇보다도 항구에서 비교적 가까운 곳에 있던 항모를 찾아 격침시키지 못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 공격이라 할 수 있을까?
 

- 3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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