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추어스가 한국 지사를 설립하고 한국 게임사들의 콘솔 진출 지원을 강화하고 1년 반이 지났다.
버추어스는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세계적 게임 개발사로, 전 세계 다양한 지역에 스튜디오를 두고 4000여명의 개발자로 게임 개발 전 분야 협력이 가능한 파트너 개발사이다.
포팅(이식) 작업에 강점을 가져 '다크소울' 등 유명 타이틀과 이식이 불가능하다는 평가를 받던 '니어 오토마타' 스위치 버전을 개발해 주목받았으며, 국내 게임사들과도 다양한 분야에서 협업해 '크로스파이어X', '데이브 더 다이버', 'PUBG: 배틀그라운드', '스텔라 블레이드' 등 국산 인기 게임 프로젝트와 파트너십을 맺고 제작 파트너로 개발에 참가해 왔다.
2025년 한국 지사를 공식 설립한 버추어스는 특히, 콘솔, 싱글플레이 게임 경험이 부족한 국내 게임사들에게 게임 디자인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그래픽 등 '평범'한 외주를 넘어 기획 단계부터 함께 게임을 만드는 공동 개발을 제안하고 있다.
지사 설립 1.5주년을 맞아 버추어스 서울 정재호 디자인 디렉터가 게임 디자인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기고를 보내왔기에 소개해 본다.
버추어스 서울 정재호 디자인 디렉터는 서울과 싱가포르에서 20년 이상 글로벌 게임 개발 경력을 쌓아온 베테랑 게임 기획자. 넷마블 디자인 디렉터를 비롯해 프로듀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CEO 등 다양한 리더십 포지션을 거치며 게임 개발과 조직을 폭넓게 이끌어왔다. 또 MMORPG부터 모바일 RPG, CCG·SLG에 이르는 다양한 장르에서 시스템, 콘텐츠, 밸런스, BM 설계부터 프로젝트 총괄까지 게임 개발 전반에 걸쳐 경험을 쌓았다.
기고: 버추어스 서울 정재호 디자인 디렉터
기사 작성: 이혁진 기자
게임이 점점 더 복잡해지는 시대, 협업 중심의 게임 디자인은 더 나은 게임플레이를 만들고, 개발 속도를 높이며, 창의적 비전과 비즈니스 목표를 연결하는 핵심 역할을 한다.
게임의 규모가 커지고 복잡해지고 있다. 개발비는 증가하고, 제작 기간은 길어졌으며, 디지털 스토어와 라이브 서비스 모델이 보편화되면서 게임은 출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발전한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개발팀이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동시에 프로젝트의 방향성을 일관되게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처럼 개발 환경이 복잡해지면서 게임 디자이너의 역할도 크게 달라지고 있다. 이제 디자이너는 단순히 시스템과 게임플레이를 설계하는 역할에 머물지 않는다. 개발 전반의 방향을 제시하고, 다양한 직군을 연결하며, 창의적인 개발이 비즈니스 목표와 같은 방향을 향하도록 조율한다.
가장 어려운 경쟁 상대인 플레이어, 첫인상이 성패 좌우
오늘날 게임은 더 이상 다른 게임과만 경쟁하지 않는다. 특히 캐주얼 게임과 모바일 게임 시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제 게임은 플레이어의 관심과 시간을 두고 틱톡이나 인스타그램 릴즈 같은 숏폼 콘텐츠와도 경쟁해야 한다.
플레이어의 집중 시간이 점점 짧아지는 만큼, 첫인상을 얼마나 강렬하게 남기느냐가 게임의 성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가 됐다. 동시에 플레이를 이어가고 싶게 만드는 작지만 의미 있는 즐거움을 꾸준히 제공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플레이어의 시간을 둘러싼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이러한 경험을 설계하는 것이 게임 디자인의 핵심 과제가 되고 있다.
플레이어 커뮤니티를 만드는 방식도 달라졌다. 과거에는 완성된 게임이 출시된 뒤 자연스럽게 커뮤니티가 형성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크라우드펀딩이나 얼리 액세스를 통해 개발 단계부터 충성도 높은 플레이어 커뮤니티를 구축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개발팀은 출시 이후가 아니라 제작 과정에서부터 플레이어의 피드백을 수렴하고 게임에 반영할 수 있게 됐다.
물론 이러한 접근에는 위험 요소도 있다. 플레이어의 의견에 지나치게 맞추다 보면 게임이 처음부터 지향했던 정체성과 개성이 희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성공적인 개발팀은 플레이어의 의견을 무조건 따르거나 끝까지 고집하는 대신, 피드백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도 게임이 가진 본래의 비전을 지켜내는 균형을 찾게 된다.
아시아 게임 시장에는 이러한 과제외에 또 다른 복잡성이 있다. 국가마다 문화와 플레이 성향이 다르고, 기술을 받아들이는 속도 역시 다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오늘날 개발 중인 게임 가운데 특정 지역만을 목표로 하는 작품은 점점 드물어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라이브 서비스 운영뿐 아니라 개발 방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여러 국가와 다양한 시간대의 협업이 일상이 된 만큼, 서로 다른 문화권의 팀이 원활하게 협업할 수 있도록 개발 파이프라인과 제작 프로세스를 설계하는 것이 프로젝트의 중요한 경쟁력이 되고 있다.
프로젝트의 시작부터 함께해야 하는 디자인
플레이어의 기대는 계속 변하고, 프로젝트의 방향 역시 개발 과정에서 끊임없이 조정된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도 게임 디자이너는 프로젝트가 처음 세운 비전을 잃지 않으면서도, 필요한 변화에는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중심을 잡는 역할을 한다.
게임 디자인은 단순히 콘텐츠를 설계하는 작업이 아니라, 프로젝트 전반을 이끄는 '설계도(blueprint)'와 같다. 디자이너는 여러 직군이 함께 일하는 개발 환경과 반복적인 개발 과정 속에서도 프로젝트의 방향성이 흔들리지 않도록 일관된 비전을 유지해야 한다. 다시 말해, 플레이어 만족, 창의적인 개발 역량, 그리고 비즈니스 목표라는 세 가지 핵심 요소를 하나의 방향으로 연결하고 조율하는 것이 게임 디자이너의 역할이다.
이러한 이유로 다양한 직군과 협업하고, 글로벌 시장을 대상으로 한 프로젝트를 경험한 게임 디자이너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러한 역량은 사내 교육을 통해 키울 수도 있지만, 경험이 풍부한 외부 공동 개발 파트너와 협력하는 것 역시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게임 디자인는 프로젝트 초기에 참여할수록 더 큰 가치를 만들어낸다. 특히 프로젝트의 비전을 설정하는 단계부터 함께해야 디자인이 개발 전 과정에 의미 있는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반대로 개발 후반에 문제가 발생한 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투입된다면, 디자인이 발휘할 수 있는 영향력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협업 중심의 개발 환경에서는 팟(Pod) 기반 협업 모델이 효과적인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 모델에서는 디자이너가 외부 지원 인력이 아니라 클라이언트 개발팀의 연장선에서 함께 일하는 구성원으로 참여한다. 이를 통해 빠른 의사 결정은 물론, 반복적인 개발 과정을 더욱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더 나은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또한 처음부터 큰 역할을 맡기기보다 작은 범위의 업무로 협업을 시작해 신뢰를 쌓고, 프로젝트가 진행됨에 따라 책임 범위를 점차 확대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접근 방식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Dune: Awakening'이다. 버추어스는 처음에는 아트 제작을 지원하는 프로젝트로 참여했지만, 이후 펀컴 (Funcom)과의 협업은 프로젝트 전반을 함께하는 공동 개발(Co-development) 파트너십으로 발전했다.
풍부하고 몰입감 있는 게임 세계를 구현하기 위해 펀컴은 내부 개발 역량만으로는 부족한 부분의 보완이 필요했고, 버추어스는 작업 일정과 높은 품질 기준을 충족하는 동시에 창의적인 자율성(creative autonomy)을 유지하며 긴밀하게 협력했다. 그 결과 서사를 중심으로 설계된 13개의 Imperial Testing Station과 100개 이상의 적 기지 및 미니 캠프 제작에 기여했다.
더 나아가 Virtuos는 작품 속의 적 기지를 보다 효율적이고 확장성 있게 제작할 수 있도록 모듈형 프리팹(Modular Prefabrication) 시스템을 개발했다. 이는 단순히 콘텐츠 제작을 지원하는 수준을 넘어, 펀컴의 월드 빌딩 역량 자체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데 기여했다. 이는 버추어스의 여러 스튜디오와 펀컴 개발팀과의 하나의 조직처럼 긴밀한 협업의 성과라 할 수 있다.
내부 이해관계자와 비즈니스 파트너, 그리고 외부 공동 개발팀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려면 무엇보다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다. 공동 비전 워크숍 (Shared Vision Sessions), 클라이언트 담당자와의 정기적인 1:1 미팅, 그리고 직군을 넘어 함께 플레이하며 의견을 나누는 크로스 디서플린 플레이 세션(Cross-discipline Play Sessions)은 프로젝트의 방향을 일치시키고, 개발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필요한 시행착오를 줄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게임 디자인, 개발을 주도하는 리더십
이제 '디자인은 곧 리더십'이라는 것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다. 성공적인 게임을 만들기 위해 반드시 갖춰야 할 조건이 됐다.
오늘날 게임 디자이너는 하나의 역할만 수행하지 않는다. 이들의 업무는 단순히 게임플레이 시스템을 설계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새로운 개발 도구와 플레이어의 기대가 끊임없이 변화하는 가운데, 게임 디자인의 방식 역시 문서 중심의 기획에서 엔진 안에서 직접 구현하고 반복적으로 개선하는 형태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디자이너가 추구해야 할 궁극적인 목표는 분명하다. 명확한 비전을 제시하고,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이끌며, 플레이어 경험에 대한 목표를 팀 전체가 공유하도록 하는 것. 이를 통해 개발팀이 하나의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궁극적으로 성공적인 게임을 완성하는 것이다.
게임이 더욱 복잡해지고, 협업의 범위가 넓어질수록 게임 디자인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이제 게임 디자인은 게임 시스템을 설계하는 직무를 넘어, 플레이어 경험과 창의적인 개발, 그리고 비즈니스 목표를 하나로 연결하는 리더십의 역할을 수행한다. 성공적인 게임은 뛰어난 아이디어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프로젝트 전반을 하나의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게임 디자인의 리더십이 있을 때 비로소 완성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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