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애니메이션의 신경지, 日에서 본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너의 이름은'

등록일 2016년10월17일 15시05분 트위터로 보내기


최근 일본에 다녀왔다. 일본에 간다고 하니 일본의 지인들이 입을 모아 영화를 하나 보고가야 한다고 추천을 해 왔다. 오래된 지인들이 이렇게 입을 모아 특정 작품을 권하는 것은 근 10년 내엔 없었던 일이다. 대체 어떤 작품이길래 그러나 하고 보니 신카이 마코토(新海誠) 감독의 신작이라고 했다.

신카이 감독의 작품이라면 지금까지 나온 건 모두 감상했다. 인터뷰도 세 차례 진행했다. 신카이 감독은 발상, 연출은 훌륭하지만 약점도 많은 감독으로 (기자는 팬이지만) 마니악한 작품을 만드는 감독이라는 인상이 강한 크리에이터다. 그렇기 때문에 '대체 왜들 이러나'라는 의문과 함께 직접 확인해 봤다.

그 작품은 미야자키 하야오 외에는 그 어떤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도 도달하지 못했던 '1000만 관객 동원'을 달성하고 흥행기록을 계속 이어가고 있는 '너의 이름은'(君の名は。)이다.


결과를 적자면, 첫 감상에서 깜짝 놀라고 '내가 뭘 본 거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어 일본 체류 중 세번이나 감상하고 돌아왔다. 일본에 체류하며 낮에는 취재를 다니고 일과가 끝난 밤에는 너의 이름은 심야상영을 보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일본의 영화티켓은 1800엔(약 2만원)으로, 마지막 상영(밤 11시 전후)은 500엔 할인한 1300엔(약 1만5000원)에 구입할 수 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기자의 가방에는 너의 이름은 팸플릿, 너의 이름은 소설, 너의 이름은 설정집이 들어있었다.

한 마디로 흠잡을 데 없는 작품이었다. 모든 면에서 평범해서 흠잡을 데가 없는 게 아니라 모든 면이 훌륭했다는 의미로 적은 것이다.

일단 1인 작업, 소수 작업을 유지해 왔기 때문에 신카이 마코토표 작품의 최대 단점으로 지적되어 온 애니메이션으로서의 완성도 면에서 완벽한 모습을 보여줬다.

기자는 지브리가 해체될 때, 지브리가 보유했던 장인들이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로 퍼져나가 지브리와는 다른 방향성을 가진 완성도 높은 애니메이션 제작이 늘어날 것 같다는 기대를 했다. 너의 이름은은 그런 기대를 200% 충족시켜주는 작품이었다.

'원령공주',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작화감독으로 유명한 안도 마사시가 작화감독으로 참여해 안정감을 부여했고, 제작사인 코믹스 웨이브 필름이 품은 지브리가 키워낸 일본 최고 수준의 '동화맨'들이 안정적이고 흐트러짐없는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냈다.


늘 그렇듯 신카이 감독이 직접 담당한 각본, 이야기 부분을 살펴보면 전작들과는 꽤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간단하게 표현하면 '정직한, 한가운데 직구승부를 하는 스토리'다. 그런 팬들이 신카이 마코토답지않다(?)고까지 느낄 이야기를 언제나와 같은 기법, 연출을 적절히 사용하면서 빠른 템포를 유지하는 가운데 설득력있게 보여준다.

신카이 감독이 공식 팸플릿에서 하고있는 말을 옮겨본다.

"'별을 쫓는 아이' 전에는 스스로의 감각만으로, 지식이나 경험과 같은 근거가 없는 채로 작품을 만들어온 것 같습니다. 그런 근거, 바탕이 없다는 부분이 오히려 다른 작품들과 차별화되는 나만의 작품의 근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있었던 겁니다. 저는 원래 애니메이션 업계 출신이 아니므로 문외한이 중간에 들어와서 공부를 해 봐야 다른 사람들을 이겨낼 수 없다고도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별을 쫓는 아이를 만들기 시작할 즈음 이대로는 미래가 없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가 이렇게 생각한 이유는 너의 이름은 공개 전 팬들의 가장 큰 지지를 받은 '초속5센티미터'가 의도한 바와는 전혀 다른 형태로 팬들에게 받아들여졌기 때문이었다. 신카이 감독은 "내가 그려내려고 한 것은 어디까지나 일상에서의 정서적인 부분으로 이야기가 해피엔딩인가 배드엔딩인가라는 생각 자체가 없었다. 하지만 많은 팬들이 배드엔딩 이야기로 받아들였고, 작품을 받아들이는 건 감상하는 사람의 자유이지만 적어도 나로서는 배드엔딩을 그리려는 생각은 없었다. 그런 결과가 된 것은 기술적인 문제" 라고 줄기차게 밝혀 왔다.


사실 기자도 인터뷰에서 신카이 감독의 말을 빈말로 받아들였었다. 신카이 마코토 하면 '커플 브레이커'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배드엔딩을 선호하는 감독이라는 인상이 강했던 게 사실이다. '언어의 정원'이 국내에 소개될 때 그와 나눈 대화를 옮겨본다.

"사실 초속 5센티미터 때는 보고 나서 기운이 빠졌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기운이 빠지고 괴롭게 만들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사실 초속 5센티미터도 괴롭히려고 만든 게 아니라 '인생, 살다 보면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는 법이니까 힘 내라'는 격려의 의미를 담은 작품이었는데 의도와는 다르게 전해진 것 같습니다"

신카이 감독은 자신의 말을 증명하듯 별을 쫓는 아이부터 각본 연습을 새로 시작해 중, 단편 및 CM 작업을 하며 기본을 쌓아 너의 이름은을 보여줬다. 그는 너의 이름은을 만들게 되었을 때 이제는 정직한, 한가운데 승부가 가능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의 말대로 너의 이름은은 정직한, 한가운데 승부를 하는 최근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보기 힘들었던 그런 류의 작품이다. 일본에서 너의 이름은과 신카이 마코토를 두고 '포스트 미야자키 하야오' 이야기가 나오는 게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너의 이름은이 미야자키 하야오 애니메이션과 비슷한 느낌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미야자키 하야오와 같은 실적을 낼 수 있는 높은 수준의, 정직한 작품이라는 의미에서다.

또 한가지 너의 이름은에 주목할만한 점은 이 작품이 일본의 일반적인 애니메이션 제작방법인 TV방송국을 포함한 제작위원회 시스템으로 제작된 게 아니라는 것이다. 너의 이름은 제작을 지원한 것은 일본 문화청 소관의 독립행정법인 일본예술문화진흥회로, 신카이 감독의 소속사인 코믹스 웨이브 필름이 제작했다.

기자는 수년전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 토미노 요시유키(기동전사 건담, 오버맨 킹게이너 등), 타카마츠 신지(은혼 등), 후지타 요이치(은혼, 오소마츠상 등)를 만났을 때 '정부가 지원해서 재미있는 작품이 나올 수가 없다'는 말을 듣고 공감했던 적이 있다.

사실 그 때 나오던 일본의 정부지원 애니메이션은 하나같이 무겁고 재미를 추구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국내에서도 비슷한 시기에 정부지원을 받아 나온 작품이 '김치워리어'였던 걸 생각하면 세 감독의 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 일본에서는 정부 지원 하에 독립 제작으로 작품성과 재미를 모두 갖춘 걸작이 나왔다. 놀랍고 부러운 일이다.

일본에서는 이 부분을 놓고 일본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는데, 너의 이름은이 돌연변이같이 하나 튀어나온 작품인지 향후 이어질 수준높은 극장판 독립 애니메이션들의 시초가 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할 것 같다.


신카이 감독의 다음 작품에도 정말 큰 기대가 된다. 이 정도 큰 기대를 품는 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보고나서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보기 전, 그 시점밖에 없었던 것 같다.

신카이 감독은 너의 이름은 공개 후 줄기차게 앞으로 몇 작품 더 엔터테인먼트에 충실한 작품을 만들 것이라 말하고 있다. 몇 작품이 아니라 그가 앞으로 계속 그런 작품만 만들어주면 좋겠다.

너의 이름은은 부산영화제와 부천영화제에서 선행 공개된 후 내년 1월경 국내 정식 개봉될 예정이다. 국내에서도 꽤 좋은 성적을 거둘 것이라 예상한다. 국내에 개봉하면 일본에서 본 것보다 더 많이 보러갈 생각이다. 이 글을 읽고 궁금해할 독자 여러분도 몇번이고 극장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될 것이라 예언한다.

* 본문에 포함된 스틸컷은 국내 수입사인 미디어캐슬에서 공식 배포한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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