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 게임사들 중 최초의 AAA급 오픈월드 액션 어드벤처 게임 도전작, 펄어비스의 '붉은사막'이 마침내 베일을 벗는다.
여러 게임사들이 PC & 콘솔 플랫폼에 도전을 이어가며 나름의 결과물과 성과를 내고 있다. 그리고 이제 바톤은 펄어비스에게 넘어가기 직전이다. '붉은사막'은 2018년 개발 착수부터 따지면 출시까지 무려 8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다. 개발 기간이 늘어지는 게임들은 퀄리티가 부족하다는 통념 때문에 일각에서는 우려도 있었지만, 결국 펄어비스는 수준 높은 게임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하고야 말았다.
'P의 거짓'이 좋은 레퍼런스를 기반으로 변주를 더해 자신만의 영역을 만들어 내는데 성공했듯이, '붉은사막' 또한 이처럼 여러 명작 오픈월드 액션 어드벤처 장르들의 장점들을 펄어비스의 스타일로 잘 버무려 놓은 게임으로 완성됐다. 만약 자신이 '레드 데드 리뎀션 2', '더 위쳐 3: 와일드 헌트', '젤다의 전설' 시리즈 등 오픈월드 액션 어드벤처 게임을 즐겁게 플레이 했다면 분명 만족할 것이라 자신한다.
'붉은사막'의 게임성이나 기술적 성취는 분명 매우 뛰어나며 국내 게임사들의 PC & 콘솔 게임 개발 도전에 또 하나의 이정표를 세운 게임이라 호평할 수 있다. 다만 '붉은사막'이 모두를 위한, 모두에게 자신있게 추천할 수 있는 대중적인 게임이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하고 싶다.
'붉은사막'은 펄어비스가 추구하는 특유의 게임성과 차별화를 위한 몇몇 요소들로 인해 극도로 취향을 타는 게임이며 학습 곡선도 높다. 콘텐츠의 분량도 상당하며 퍼즐이나 상호작용 요소들도 상당히 고전적이다. 장르 자체에 대한 호오, 의도된 것으로 보이는 불친절함, 시간이 부족한 현대인들에게는 지나치게 방대하다고 느껴질 수 있는 콘텐츠 볼륨 등 게임의 평가를 가를 요소들이 존재하는 만큼 신중하게 접근하길 추천하고 싶다.
압도적인 기술력으로 완성된 그래픽과 최적화
게임을 플레이 하다 보면 압도적인 그래픽과 최적화가 가장 먼저 체감된다. 이미 여러 IT 전문 미디어나 유튜버, 리뷰어들의 공통적인 증언(?)으로 다들 눈치 챘으리라 생각하지만, 나도 이 의견에 깊이 동의한다는 뜻을 확실하게 밝혀둔다.
최소 사양에 가까운 PC 스펙으로는 옵션을 매우 많이 타협해야 하지만 어쨌든 플레이가 불가능하지 않고, 하이엔드와 메인스트림 사이 정도 사양의 PC에서 옵션을 높게 잡아도 불필요한 프레임드랍이나 깨짐 등은 느낄 수 없었다. 콘솔이나 UMPC에서도 무리 없이 플레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간 펄어비스의 자체 엔진 개발 시도는 무모한 것으로 여겨졌고, 업계와 게이머 모두에게서 우려의 목소리를 산 것이 사실이다. 개발 효율 추구와 비용 절감을 위해 상용 엔진과 상용 에셋들을 사용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 된 시대이고, 게임 하나만 재미있게 만드는 것도 어려운 시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붉은사막'을 직접 플레이 해보고 또 사옥 투어를 통해 경험해본 바, '붉은사막'은 블랙스페이스 엔진 그리고 펄어비스 표 게임의 기술적 우려를 불식시키기에는 차고 넘치는 충분한 결과물이지 않았나 싶다.
물론 개발자 확보의 어려움이나 기존 상용 엔진을 활용한 게임들과의 이질감 등 자체 개발 엔진이 가지는 약점도 있겠지만, 지금으로서는 강점이 더 강하게 느껴졌다. (김대일 의장 등 회사의 의중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겠지만) 엔진 세일즈라는 가능성도 열어둘 수 있게 됐고, 추후 펄어비스가 개발할 게임들의 개발 속도에도 탄력이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게임사들의 '고질병', 다듬어지지 않은 스토리의 완성도
스토리는 솔직히 말하자면 썩 좋지 못하다. 이는 펄어비스만의, 혹은 '붉은사막'만의 문제가 아닌 국내 게임사들의 고질병이라고 할 수 있다. 목표는 제시되지만 그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이 매끄럽지 않고, 당위성 또는 목적 부여나 연출 면에서도 아쉬움이 두드러진다.
전반적으로 여운을 남기는 스토리이기는 하나 스토리 하나만을 위해 플레이 할 정도로 좋다고 하기는 어렵다. '더 위쳐 3: 와일드 헌트'나 '레드 데드 리뎀션 2' 같이 세계관에 몰입하고 실제 주인공이 된 것 같은 체험을 한다기 보다는, 그의 일대기를 따라가는 관찰자 같은 느낌이 더 강하다.
자세한 이야기는 스포일러가 되므로 리뷰에서 언급하지 않겠지만, 액션이나 콘텐츠 분량 그리고 월드를 모험하는 재미 등 다른 게임의 요소들에 비해 부족한 완성도는 역시 아쉽게 느껴진다.
누가 오픈월드 게임은 액션성이 떨어진다 했는가
액션은 그 자체로 '붉은사막'의 최대 강점으로 꼽을 수 있다. 최근 액션 게임들의 흐름을 보면 소울라이크 스타일의 묵직한 게임들이 많은데, '붉은사막'의 액션은 유니크하면서도 또 호쾌하다. 다른 액션 게임들과 공통분모는 있지만 차별화되는 요소가 더 크기 때문에, 타 오픈월드 게임에서의 액션이 불만족스러웠다면 '붉은사막'이 좋은 해답이 될 것이다.
초반 스킬이 몇 가지 없을 때는 크게 다르지 않고 심심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플레이를 하면서 얻는 재화로 스킬을 하나씩 해금해 가다 보면 그 바리에이션이 큰 폭으로 넓어지며 자신만의 플레이 스타일로 즐길 수 있게 된다. 일부 기술들은 재화를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보고' 스킬을 익힐 수 있고, UI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스킬에 투자할 수 있다. 리뷰 빌드 기준으로는 초기화에 재화도 들지 않았다.
이미 여러 영상을 통해 공개됐듯이 격투 기술, '용기'를 사용하는 특수 기술 등이 다양하게 마련되어 있기 때문에 보스들을 공략함에 있어 '어떤 기술이 유효한가'를 연구하고 활용하는 재미가 상당하다. 일례로 나는 '리드데빌'을 상대하다 우연히 발견했는데, 바람 장막을 모아 한 곳에 유지시킬 수 있는 기술로 상대를 공중에 띄워 프리딜 타임을 만들 수 있는 식이다. 아마도 대형 보스에게는 통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또 '클리프' 외에도 플레이가 가능한 캐릭터들(웅카, 데미안)도 마련돼 있는데, 각자의 스타일과 개성이 뚜렷하고 마치 새로운 게임을 플레이 하는 감각을 선사해 매우 만족스러웠다. 감히 예상해 보건대 '데미안'의 인기가 상당히 높을 것 같다.
명백히 호오 갈릴 조작감과 조작 체계, 그리고 월드와 퍼즐 및 상호작용
조작감과 조작 체계는 명백히 단점, 또는 호오가 갈릴 수밖에 없는 영역이다. 플레이 해본 게임 중 가장 유사한 조작감은 평상시 및 이동은 '레드 데드 리뎀션 2', 전투는 '배트맨 아캄 나이트' 시리즈 또는 '더 위쳐 3: 와일드 헌트'였다. 조작 체계가 다른 액션 게임들과 다소 다른 점이 있어 적응에 시간이 매우 오래 걸리고, 묵직하게 느껴지는 조작감 때문에 상당한 불편감이 있다.
퍼즐이나 상호작용에 있어서도 펄어비스는 타협을 거부했다. 오픈월드 액션 어드벤처라면 퍼즐이나 여러 상호작용 요소들은 당연히 있어야 하는 것이지만, 최근 오픈월드 게임들은 상당히 친절하고 또 알기 쉽게 되어있는 면이 있다.
하지만 '붉은사막'의 퍼즐이나 오픈월드 상호작용은 마냥 친절하지 않다. '노란색 페인트'와 같은 힌트로 가야할 길이나 퍼즐을 푸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으며, 그 어떤 것이든 직접 고민하고 시도하며 답을 찾아내기를 요구하는 고전적인 방식을 고수한다. 누군가에게는 답답하고 피곤한 방식으로 느껴지겠지만, 이 게임에 보다 몰입하고 세계를 모험하는 재미를 느끼고자 하는 장르 팬들에게는 더없이 즐거운 경험이 될 것이다.
NPC들의 대사나 여러 오브젝트의 상호작용 등 게임에 리얼리티를 불어넣는 요소들의 완성도도 준수하다. 단순히 그래픽만 좋은 것이 아니라 부서질 것처럼 보이는 것은 실제로 부서지고 가볼 수 있어 보인다면 갈 수 있다. NPC들과 부딪히면 저마다 불평을 내뱉거나 시비를 거는 등의 상호작용도 자연스럽다.
사전 플레이는 약 2주의 시간이 주어졌는데, 최대한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절반도 채 즐기지 못한 상태다. 이미 여러 루트를 통해 말도 안되는 수준의 방대한 콘텐츠 분량, 종류가 마련되어 있음이 알려졌는데 이는 명백히 사실이다.
때문에 만약 오픈월드를 느긋하게 '파먹는' 사람이라면 '붉은사막'의 즐길 거리는 분명 만족스러울 것이라 자신한다. 느림의 미학과 묵직한 감각을 원하거나 내 손으로 한땀한땀 오픈월드를 모험하는 것 자체를 기꺼이 즐기는 유저에게는 '붉은사막'이 수백 시간의 플레이 타임을 선사하는 최고의 오픈월드 액션 게임이 될 것이다.
반대로 '레드 데드 리뎀션 2'의 유명한 '폐사' 구간인 설산을 쉽사리 넘기지 못한 유저, 방대한 즐길 거리를 선사하는 게임에 오히려 '너무 많아서 부담스럽다'라고 느끼는 유저라면 '붉은사막'의 플레이가 상당히 괴롭게 느껴질 수 있다.
타협 없는 고집으로 탄생한 압도적 분량의 오픈월드 액션 게임, '붉은사막'
'붉은사막'은 기술적 성취와 압도적인 콘텐츠 분량, 유니크한 액션성, 의도된 불친절함, 느림의 미학을 한 곳에 담아낸 게임이다. 2주간의 사전 플레이로도 절반을 다 채우지 못할 만큼 방대한 콘텐츠는 오픈월드를 한땀한땀 '파먹는' 즐거움을 아는 유저에겐 수백 시간의 축복이 되겠지만, 빠른 호흡과 명확한 가이드를 원하는 유저에겐 거대한 벽이자 부담으로 다가올 것이다.
만약 기술이 선사하는 리얼리티와 오픈월드를 모험하는 재미를 위해 시스템의 불편함을 기꺼이 감내할 수 있다면, '레드 데드 리뎀션 2'의 느릿한 설산 구간에서 고전적인 낭만을 느꼈다면 '붉은사막'은 새로운 인생 게임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효율성과 쾌적함, 편리함과 압축적인 재미를 우선시하는 사람이라면 신중하게 게임의 진입 여부를 결정하길 권한다. 펄어비스는 대중과 타협하는 대신 자신들만의 색깔을 완성하는 길을 택했고, 그 선택에 대한 최종적인 평가는 이제 게이머들의 몫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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