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기]청중도 자고 패널도 잔 중독법 토론회, 누구와의 소통이 필요했나?

등록일 2014년05월23일 09시55분 트위터로 보내기

이른 오후라는 것을 감안했을 때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종교단체 관계자들이 대거 성명을 발표하는 것으로 알려지며 업계의 큰 관심을 받았던 '중독포럼 중독정책국회토론회'가 지난 22일 개최됐다.

이 자리에서는 '범종교시민사회 200인 선언문' 낭독을 시작으로 4대 중독의 피해 및 회복 사례를 발표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에 대한 다양한 토론이 진행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결론부터 이야기 하자면 토론은 없었다. 게임뿐만이 아니다. '알콜', '약물' 등 다양한 주제가 발표되었지만 그에 대한 반대 논리를 주장하는 발표나 토론은 일절 진행되지 않았다. 토론이 무엇인가. 찬성과 반대의 입장으로 나뉘는 주제에 대하여 각각 서로의 입장을 관철시키기 위하여 근거를 들어 자기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펼치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토론회에선 반대쪽 패널과 관계자는 일절 등장하지 않았다. 토론회가 아니라 단순한 발표회 혹은 강의로 불려도 될만했다.

반대쪽 패널이 나오지 않은 이유가 궁금해졌다. 기자가 관계자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했지만 토론회의 시작사를 듣고는 이내 생각을 접었다.

이날 토론의 사회자로 나선 이해국 중독포럼 상임운영위원은 시작사를 통해 "1년 반 이상 국가적 수준의 중독 예방을 위한 활동을 전개해왔다. 우리들의 활동은 특정한 법만을 통과시키기 위한 활동이 아니다.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독이 개인의 문제가 아닌 국가적인 차원에서의 공공의 서비스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에 공감대를 공유하는 소통의 자리가 되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공감대를 공유하고 소통하자라는 말에서 이미 모든 결론이 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분명 반대 패널이 해당 자리를 거부했을 수도 있고 연락조차 안했을 수 있었다. 그러나 어떠한 이유였든 간에 지난 10월에 진행된 4대중독 토론회와 크게 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관련기사)

학교 근처에 세워지는 화상 경마장의 실태를 진정성 있게 이야기 하는 패널도 있었다

게임전문 취재기자인 만큼 '알콜'과 '약물'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오늘 진행된 토론회는 분명 좋은 내용, 참고할 만한 내용이 많았다. 그들이 말하는 다양한 설명에는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도 있었다. 적어도 중독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왜 위험한지, 세계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아울러 우리는 어떻게 해야될지를 일목요연하게 설명했다.

실적발표인지 토론회인지 분간이 가질 않았다

그러나 게임에 대한 토론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통계 일변도였다. "통계가 이러니 위험하다", "통계가 이러니 막아야 한다", "통계가 이러니 업계도 방관하면 안된다" 등 모든 내용이 통계의 결과를 갖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상대를 설득하려고 할 때 객관적인 지표만큼 효과적인 것은 없지만 통계의 결과만을 인용해 일반화를 시도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통계가 갖는 오류와 함정이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 지표가 학계에서 완벽하게 검증이 끝나지 않은 자료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토론회가 아니라 흡사 실적발표를 보는 것과 같았다.

중독의 역사가 '약물'이나 '알콜' 만큼 오래되지 않았고 검증된 자료가 많지 않기 때문에 지표만을 갖고 이야기 할 수 밖에 없는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검증된 자료가 많지 않다면 대중의 공감을 이끌어낼 만한 보다 폭넓고 다양한 시각에서 이야기 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끝까지 일반인이 잘 모르는, 정신의학계에서 주장하고 있는 DSM-5 진단기준 만을 놓고 이야기했다. DSM-5 진단기준 도구는 미국정신의학회에서 조차 '관찰할만한 부분이 있다'고 언급했을 뿐 게임을 중독에 포함한 것이 아닌 기준임에도 불구하고 해당 진단기준을 통한 결과만을 부풀려 생산하기에 급급해했다.

다른 학자들조차 정신중독학회가 내놓은 결과에 의구심과 위험한 발상이라는 부정적인 입장을 제기하는 상황에서 꿋꿋하게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려는 주장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우직하다기보다는 안쓰러운 마음도 들었다.

적어도 졸지는 않았어야 할 패널들, 아예 코를 골며 깊은 수면을 취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이번 토론회에서 무엇보다도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은 참석했던 패널과 청중의 토론에 임하는 자세였다. 사회자가 외친 '공유'와 '소통'에는 아랑곳없이 끊임없이 핸드폰을 만지거나 심지어는 긴 수면에 들어간 청중의 태도는 취재를 하는 기자의 입장에서 심히 불쾌했다.

아동 청소년이 2시간이 넘게 인터넷이나 게임을 하면 비정상으로 보는 이들이 정작 스마트폰을 몇 시간동안 손에 놓지 않고 만지는 모습, 아예 모든 것을 뒤로하고 잠든 이들도 있었다. 심지어 토론의 주체로 가장 앞에서 200인 선언을 했던 일부 발표자들 역시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일부는 코까지 고는 무례를 범하고 있었다.

이들은 이미 토론회의 내용은 관심이 없었다. 어차피 이들은 '게임중독은 위험하고 게임은 규제해야 할 대상'이라고 이미 규정했고 그렇기 때문에 토론회의 내용을 들을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기자의 자리는 바로 패널의 뒷자리였다. 꾸벅꾸벅 졸던 패널 중 일부는 이미 코를 골기 시작했다. 청중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중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허례허식에 가득한 말 보다는 짧아도 진심을 전할 수 있는 진정성, 그리고 그것을 깊이 경청할 수 있는 청중들의 노력에서 시작된다는 가장 기본적인 규칙을 새삼 떠오르게 한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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