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주(覆奏), 부서(簿書), 함사(緘辭)처럼 두꺼운 국어대사전에도 안 나오는 표현을 그대로 놔둔 번역은 엄격하게 말하면 번역이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영어 책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이유는 영어를 모르는 독자를 위해서이고 한문 고전을 현대 한국어로 번역하는 이유는 한문을 모르는 독자를 위해서라는 당연한 상식이 통하지 않을 만큼 원문을 존중하는 직역주의가 한국에는 아직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 p.30저자는 우리나라 번역의 지나칠 정도의 원문 지향적인 태도를 지식층의 숭배에 가까운 외국어 선호경향에서 찾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이전에 한문이 지식의 중심일 때는 한문을 읽으면 됬?? 일제강점기 시절에 일본어가 지식의 중심일 때는 일본어를 읽으면 됬??때문에 한글로의 번역 필요성이 적었고, 번역하더라도 원어 중심의 번역을 선호했다는 것입니다.
번역을 할 때 결코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직접 갈 수 없다. 사전을 이용한다 해도 그렇게 할 수 없다. 항상 현실 세계를 거쳐서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가야 한다. 각 언어는 현실 세계의 지도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어떤 언어도 다른 언어와 직접적으로 비슷하지는 않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언어의 종말》p.482저자는 과도한 직역주의와 수많은 번역문을 접하게 되는 것이 한국어의 개성 상실에 이어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직역 번역문에 익숙해져간다면 추상 명사가 주어나 목적어 자리에 오는 것을 꺼리고, 능동태가 더 자연스러우며, 대명사를 잘 활용하지 않는 규칙 등 듣기에 자연스러운 한국어의 개성이 사라져간다는 것입니다. 번역서가 아닌데도 외국어 규칙을 기반으로 한 한국어를 쓰는 한국 작가들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이고, 독자들도 그것이 부자연스럽다는것을 느끼지 않고 있습니다. 저도 수많은 직역 번역문을 읽고 습관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이 글에서도 직역의 경향을 쉽게 찾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때문에 저자는 직역 위주의 현실에서 균형을 잡아줄 한국어의 개성이 살린 의역의 필요성을 역설합니다. 독자들이 번역서를 통해 원하는 것은 '뿅가죽는' 번역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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