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제공 : '피아비키의 문화공작소' 운영자 피아비키(http://jhwhjn.blog.me/220469707999)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는 분열로 가득하다. 과거 8-90년대 절정이었던 지역갈등이 '3金 시대'의 종결과 함께 사라지나 했더니, 21세기 들어서는 세대 간 갈등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1997년 IMF가 초래한 부작용 덕분에, 청년층, 장년층, 노년층 할 것 없이 각자가 억울함과 논리를 내세우며 팽팽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중이다.
거기에 2000년대 중반부터는 슬그머니 남녀간의 분열 현상도 나타났다. 심각한 취업난 속에서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지면서, 여성들이 그 어느때 보다 강력한 남성들의 경쟁자로 부각되기 시작한 탓이다. 그것은 자연스레 남녀 간의 데이트 비용 분담 문제나 결혼혼수 분담, 육아와 양육의 역할 분담 등, 전통적인 성역할에 대한 논쟁까지 확대되었다. 그것도 남녀 개인적 영역이 아닌, 전 사회적 영역에서 말이다.
어찌보면 우리 사회는 분열과 대립에 익숙한 것처럼 보인다. 광복 이후 국토가 남북으로 갈라진 것부터, 아니 그보다 조선시대 붕당정치나 훈구파와 사림파, 노론과 소론의 대립도 그랬다. 굳이 조선 이전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지 않아도 우리 역사속에서 여러 이해관계 때문에 각 영역에서 두 거대한 세력이 갈등하는 사례를 찾아보기란 어렵지 않다.
그런데 요즘에는 이러한 갈등들이 좀더 세분화되는 양상을 보이는 것 같다. 특히 여성들 사이에서 말이다. 이미 남녀간의 갈등으로도 지치고 힘든데, 최근에는 여성들 사이에서의 갈등도 만만찮다. 워킹맘과 전업맘, 기혼녀와 미혼녀(주로 '노처녀'라고 불리는 이들), 일에 미친 여자들과 사랑에 빠진 여자들, 외모와 경제력에 따른 비교와 경쟁 등. 여성들간의 갈등 양상은 기존의 사회적 갈등과 달리, 매우 세부적이고 구체적이며 다양하다.
"여자는 질투의 화신"
여성들에 대한 사회적 규정의 한 단면이다. '여자=질투'라고 규정한 것은 남성들의 기준이었음이 분명하지만(그래서 여자 입장에서는 화가 나기도 하지만), 이러한 묘사가 무조건 틀린 것만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모든) 여자 = 질투'라고 표현한 것이 부당할 뿐이다. 수정하자면 "일부 여자=질투심 강한 기질"이 맞지 않을까. 단, 여기서 '질투'가 무조건 나쁘다는 기존의 남성적 인식은 따르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 말이다.
진 시노다 볼린의 <우리 속에 있는 여신들>은 '여성들의 다양한 성격과 기질'에 대해 다룬 여성 심리학 책이다. 그러나 보통의 심리학과 달리, <우리 속에 있는 여신들>은 분석기준을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여신들로 하고 있어서 남성들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볼린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신 중 아르테미스, 아테나, 헤타이아, 헤라, 데메테르, 페르세포네, 아프로디테의 7명을 제시하면서, 이들 캐릭터 분석에 기반하여 여성들의 유형을 제시한다.
가령 사냥과 달의 수호신이었던 아르테미스는 목표지향적이고 리더쉽이 강한 여성상을 대표하고, 전쟁과 지혜의 수호신인 아테나는 명석하고 논리적이며 전략수립에 능한 여성들을 대변한다. 그리스 신화에서 가장 덜 알려져있는 헤스티아는 화로와 사원의 여신인데, 아테나나 아르테미스와 같은 유형군에 포함되나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고 고독을 즐기는 유형의 내향적이지만 독립적인 여성들을 보여주고 있다.
반면 일보다는 관계를 중시하는 여성들도 있다. 결혼의 여신인 헤라는 이성교제를 중시하여 사랑을 갈구하는 감성적인 여성들을, 곡식의 여신이자 페르세포네의 어머니였던 데메테르는 자식이나 타인을 돌보는데(caring) 집중하는 여성들의 특성을 보여준다. 그리고 데메테르의 딸이자 하데스의 아내였던 페르세포네는 순종적이고 타인에 순응하는, 수동적인 성격의 여성들을 상징하며, 미의 여신인 아프로디테는 관능미를 지닌 여성 또는 창작과 창의력이 뛰어난 예술적 기질의 여성들을 보여주는 표본이다.
저자는 이에 대해 아르테미스, 아테나, 헤타이아를 독립적이고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는 성격이라는 점에서 '처녀' 여신으로 규정한다. 여기서 '처녀'는 '독신'의 의미에 가까운 의미, 즉 미혼이 아니라 '비혼' 의미로서의 처녀를 뜻한다.
반면 헤라, 데메테르, 페르세포네는 관계를 중시하는 특성 상, 이성이나 자녀, 가족에게 의존적이며, 여린 성품과 수동적인 성격을 지녔다는 점에서 '상처받기 쉬운' 여신으로 보았다. 주로 전통적인 여성상에 부합하는 이미지다.
이 두 유형에 속하지 않는 아프로디테는 처녀 여신과 상처받기 쉬운 여신들의 특성을 동시에 갖고 있으면서도 자신만의 새로운 유형으로 나타난다는 점에서 '창조하는' 여신으로 분류했다.
처녀 여신, 상처받기 쉬운 여신, 그리고 창조하는 여신. 번역의 문제인지 원문의 문제인지는 모르지만 네이밍 자체에서부터 두 번째 '상처받기 쉬운 여신'이 부정적인 어감을 주고 있는 것은 아쉽다. 하지만 책을 읽어보면 저자는 이 일곱 여신들의 각 장점과 단점을 세세히 다루고 있는데, 이러한 여신들의 원형을 가지고 있는 여성들은 여신들의 장점을 살리되 단점을 줄이는 방안으로 다른 여신들의 원형을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1. 처녀 여신 유형 (일 중심적, 이성적)
첫 번째 유형인 '처녀 여신'은 사랑보다는 일을 중시하고, 감정과 감성보다는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며, 자기 주장과 신념이 확고한 여성들을 의미한다.
이런 여성들은 다시 아르테미스, 아테나, 헤스티아로 세분화되는데, 외향성의 여부, 직관성의 여부, 감정의 진폭 여부 등 여러 특성에 따라 조금씩 달라진다. 그러나 공통적으로는 타인에 대해 심리적 거리감을 두는 차가움과 냉정함, 또는 대인관계에 약한 부분은 이들 유형의 여성들이 극복해야 할 과제이다.
아테나의 경우, 외교적인 능력이 발달했으나 이는 정치적 수완, 즉 '필요'에 의한 전략적인 사교일 뿐으로, 아프로디테나 상처받기 쉬운 여신들의 유형과는 다른 편이다. 다시 말해, 대인관계에 대해 보다 감정적이고 '진심'을 담아 '마음을 여는' 것이 이 세 여신들을 닮은 여성들에게 필요한 작업일 것이다.
아르테미스 (좌), 아테나 (우). 헤타이아는 의인화된 모습이 없다.
2. 상처받기 쉬운 여신 유형 (관계중심적, 감성적)
'상처받기 쉬운 여신'들은 앞의 '처녀 여신'들과는 대체적으로 반대적인 특징을 지닌다.
이들은 일보다는 사랑이며, 이성과 논리보다는 감성과 감정에 익숙하다. 또한 독립적이고 주체적이기 보다는 상대와의 관계 (이성 또는 자식, 부모, 배우자)에 의존하는 편이다.
그렇다보니 혼자서는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서 그것이 질투(헤라) 또는 우울(데메테르, 페르세포네)의 감정으로 표출되곤 한다. 그러나 관계 중심적인 특성을 지닌 만큼, 이들 유형의 여성들은 따뜻한 성품과 타인과의 감정적 거리를 친밀하게 유지하는데 능숙하다.
하지만 헤라와 데메테르, 페르세포네라는 3명의 여신은 각기 외향성의 여부와 의존하는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그 특성이 조금씩 달라진다. 전통적으로 우리 사회를 비롯한 아시아권 사회에서 이상적으로 표현되었던 여성상이기도 한 이들 유형은 여성들이 주체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21세기 들어서는 일부 여성들(특히 아르테미스 유형의 여성운동가들)에게 구시대적이라는 비난을 듣기도 하지만, 여성이 지닌 고유한 모성과 내조능력, 타인을 품어주고 관계를 이어주는 '부드러움'의 특성은 존중받아 마땅하지 않을까 싶다.
왼쪽부터 아프로디테, 헤라, 데메테르(좌), 데메테르에게 돌아오는 페르세포네(우)
3. 창조하는 여신 유형 (미적 가치 추구, 예술적)
그리스 신화에서 가장 말도 많고 탈도 많으며, 어쩌면 그래서 가장 인기가 높을지도 모르는 여신은 단연 아프로디테다.
아프로디테 유형은 사랑과 미의 여신이라는 말에서 보듯, 장단점을 명확히 예상하기가 가장 쉬운 유형이다. 뛰어난 아름다움을 지닌 아프로디테는 여성들이 '미' (아름다움)에 집착하는 본능을 설명해주는 유형이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여성들의 특징이자 권리이기도 하다. 그러나 신화 속 아프로디테가 그랬듯이, 이런 유형의 여성들은 자칫 아름다움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성형중독이나 문란한 생활을 하기 쉽고, 심할 경우에는 가정을 신실하게 유지하지 못하면서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때문에 저자는 아프로디테 유형의 여성들은 헤라의 정절과 데메테르의 모성을 같이 계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흥미로운 것은 저자가 아프로디테가 아름다움을 활용해 남자들을 쉽게 바꾸는 것은 한편으로는 창조적, 예술적인 특성과 맞닿아 있다고 주장한 부분이다. 남성을 어떤 '대상'으로 바꾼다면, 아프로디테 유형의 여성들은 새로운 대상에 대해 호기심을 느끼고, 그 대상을 정복하고 이해하기 위해 자신의 매력을 발휘할 줄 안다.
또한 신화 속 아프로디테가 다양한 남성들과의 관계를 통해 여럿 아기를 낳았듯이,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아프로디테 여성들은 그 과정을 통해 자신의 창조적인 능력을 한껏 드러낸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저자는 남녀 사이의 육체적 결합으로 아기가 잉태되는 것은 모든 창조적인 과정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며, 예술가가 새로운 존재를 탄생시키기 위해 작업대상(사물, 사람, 프로젝트 등)과 상호작용을 강하게 한 결과라고 주장한다.
이는 매혹, 결합, 잉태, 새로운 탄생, 새 창조물이라는 키워드가 남녀관계와 창작 사이에서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것과도 통한다. 개인적으로 창조적인 측면에서 아프로디테의 해석은 신선했다. 막연히 아프로디테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이미지(단점)들이 강했었는데, 아프로디테의 창의력, 창조능력은 새로운 것을 공부하고 기획하고 수행하는 일련의 과정들에 절대적으로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비너스의 탄생 (보티첼리, 1486년)
이런 점에서 <우리 속에 있는 여신들>은 다양한 여성들의 특징을 보여줌과 동시에, 나 자신과 상대방에 대한 이해를 도와주는 책이다. 위에서 말했든 여성들끼리 서로 분쟁하고 대립하는 것이 나날이 심화되고 있는 요즘이다.
(주)성주인터내셔널의 여자 대표인 김성주 회장은 "툭하면 울고 수동적인 여자들의 모습이 싫어서 여직원을 잘 안뽑는다"라고 말했었다. 고백하자면 필자 또한 수동적이고 의존적인 여자들을 '공주과'라며 속으로 은근히 폄하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저자는 우리 개개인의 내면에는 7가지 유형의 여신들이 모두 자리잡고 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특정 유형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을 뿐, 다른 유형들도 모두 잠재해 있다는 것이다. 물론 메인 유형은 타고난 것도 있지만, 개인의 삶의 시기와 교육, 메인 유형조차도 사회적인 가치관 등 내적, 외적 환경 변화에 의해 달라질 수 있다.
가령 헤라를 강하게 타고 난 어느 여성이, 자라는 과정에서 아테나가 계발되면서 아테나 특성이 한동안 가장 강하게 나타나다가, 나이가 들면서 아프로디테의 특성을 살려 창작 활동을 하는 식이다. 때문에 나와 상대가 다르다고 그것을 비난하거나 배척할 필요도, 이유나 근거도 없다.
필자의 경우는 아테나, 아르테미스, 아프로디테 특성을 비슷하게 가지고 태어난 것 같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근소하게 아테나의 특성이 강하다. 특히 대학시절에는 아테나가 너무 강해서, 비판적이 되었던 부작용도 살짝 겪었다. 이런 아테나의 특성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절제된 반면, 사회생활 초기에는 조직에 순응하고 고집을 죽이는 페르세포네를 계발하는 과정을 겪었다.
어린 시절에는 아프로디테 특징인 호기심 창의력, 아테나의 지적 욕구가 작용했던 것 같다. 하지만 동시에 동네에서 남녀를 가리지 않고 팀을 만들어 산을 뛰어다니고 곤충을 채집하는 등 아르테미스적인 특징도 매우 강했었다. 30대 초반이 되어서는 하나둘씩 결혼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헤라의 특성도 조금씩 계발되기 시작했고(최근에는 헤라와 페르세포네 유형이 거의 사라진 것 같지만), 아직 돌이 안된 꼬맹이 조카를 보면서는 데메테르의 성향도 강해지는 중이다.
개인 한 사람에게서도 시기마다 다양한 여신들의 유형이 나타난다. 그렇다면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일거다. 결국 나는 아테나고 상대는 헤라라고 해서, 서로 이해할 수 없다고 배척하고 경계하고 비난하는 것은 자기감정의 소모로만 이어질 뿐이다.
우리는 상대방을 이해하자는 말을 자주 하지만, 정작 그러한 노력이 쉽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럴 때 <우리 속에 있는 여신들>에서 제시하고 있는 일곱 여신 유형들을 기억하면 어떨까. 모든 유형들은 단독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결합해서 작용하는 경우가 다반사니까 말이다. 아테나 유형의 여성이 헤라 유형의 여성을 비판한다면, 그건 결국 자신의 헤라 원형을 비판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 책은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메세지를 던진다. 60년대에 나온 책임에도 현대 사회에 그대로 적용가능할 만큼 개성있는 여성들의 특징들을 제대로 짚어냈다. 너와 나의 다름을 인정하고, 자신을 정확히 이해하며, 상대를 있는 그대로 수용해주는 것. 아르테미스의 독립심, 아테나의 직관력, 헤스티아의 침착함, 헤라의 신실함, 데메테르의 이타성, 페르세포네의 융통성, 그리고 아프로디테의 창조력까지. 모든 여성들은 각자의 장점과 특징을 지녔다. 그래서 아름답고 모두가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반면 각자의 단점과 약점도 있다. 그래서 다른 여성의 장점을 적극 수용하고 협력해야 한다.
시노다 볼린은 여신들의 유형들이 시대배경에 따라 국가별로 차별적으로 환영받았다고 말했다. 미국은 1950-60년대 베이비붐이 한창일때는 결혼을 하는 헤라와 자녀를 낳는 데메테르 유형의 여성들이 이상적으로 그려진 반면, 결혼을 거부하거나 워킹맘으로 일을 중시하는 아르테미스나 아테나 성향의 여자들은 사회적 비난을 받는 분위기가 있었다. 우리나라도 다르지 않다. 조선시대는 상처받기 쉬운 여신들의 유형이 절대 미덕으로 여겨졌고, 이러한 경향은 산업화가 이루어지던 70년대 초반까지 이어졌다.
현재 시대에는 어떤 여신의 유형이 우리 사회에서 환영받고 있을까?
여성의 사회진출이 높아지면서 이제는 아르테미스나 아테나 유형의 여성들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사회적으로도 적극 장려하는 분위기다. 반면 여전히 가정에서는 전통적인 여성상이었던 헤라나 데메테르, 페르세포네 여신의 특성이 요구되곤 한다. 가사일과 육아는 아직도 여성의 몫으로 여겨지고 있고, 여성들 스스로도 결혼 및 출산과 그에 따른 경력단절 사이에서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결혼을 하지 않은 여성들이 또래의 미혼 남성들보다 더 많은 압박을 받는 것도 전통적인 여성상의 건재함을 증명한다.
이런 현상을 보건대, 현재의 우리 사회의 여성들에 대한 인식은 과도기에 있다. 역사상 저자가 제시한 일곱 가지 여신들 유형이 지금처럼 모두 사회 전반적으로 두드러진 적도 없었고, 사회가 일곱 여신 유형을 모두 강요한 적도 없었다. 아르테미스부터 아프로디테까지 각 여신의 유형들은 그 자체로 개성이 넘치지만, 여성 개개인마다 이 모든 개성을 갖추도록 무언의 압력을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여성들은 피곤하고 지치며, 비슷한 여신 유형을 지닌 사람들끼리 모여서 그룹을 만들거나 분열하는지도 모른다. 여성 개인의 기질과 특성 외에, 사회적인 현상까지 고민할 수 있게 만든다는 점은 이 책이 지닌 또 다른 매력이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번역이다. 초판본이 1993년에 나왔고 개정판이 2003년에 나왔는데, 번역은 올드하다. 예를 들면 여배우를 '여우'라고 표현한 식이다. 원서가 60년대에 쓰인 책이라서 그럴 수 있지만, 그렇다면 각주를 달더라도 현대식으로 번역했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
또한 원문의 문제로도 보이는 용어의 불확실성과 신화 사례를 적용함에 있어 정리되지 않은 느낌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구구절절 심리학적으로 풀어내고는 있지만, 읽고 나면 어딘가 모르게 불명확하고 추상적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빛난다. 그리스 신화의 여신들을 모델로, 여성들의 성격과 기질을 분석했다는 시도 자체가 신선하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내 안에 억눌려져 있는, 계발해야 할 여신의 유형은 없을까. 만약에라도 우리 사회가 특정 여신의 유형을 사회적으로 거부하고 억누르고 있어서, 그러한 유형을 지닌 여성들이 고통받거나 자신들의 장점을 발휘할 기회를 빼앗기고 있지는 않을까.
작게는 나 자신부터, 나와 다른 주위의 여성들, 나아가 우리 사회에서 살고 있는 모든 여성들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할 필요가 있다. 일곱 여신들이 서로 어떻게 결합하느냐에 따라 여성 개개인의 특성은 무궁무진하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 모든 다름을 인정하는 것. 사회가 발전하는 것은 다양성이 전제될 때 가능하다.
<우리 속에 있는 여신들>. 신화 속 여신들만큼이나 매력있는 책이다.
저자의 블로그에 가시면 일곱 여신들의 특성을 정리한 표를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