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당 리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아직 영화를 보지 못하신 분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제임스 도노반 (役.톰 행크스)
선택 받다 vs 선택 하다
1957년, 냉전시대. 동독과 서독 사이에는 베를린 장벽이 생겼고 미국과 소련(러시아)은 핵무기를 놓고 스파이 전쟁을 하던 시기였다. 미국 내에서는 반공운동이 극에 달했던 시기이기도 했다.
보험 전문 변호사로 명성이 드높았던 제임스 도노반(톰 행크스)은 핵무기 전쟁에 대한 공포감이 정점을 이루던 그 시기에 소련 스파이인 루돌프 아벨(마이크 라이런스)의 변호를 제안 받는다. 그저 인도주의 차원에서의 보여주기식 변론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변호는 있지만 지는 재판이었던 셈이다. 핵무기 전쟁이 발발할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잡힌 스파이는 최고형인 사형을 받게 되는 것이 당연했다. 결과는 정해져 있었고 도노반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해도 되고 하지 않아도 되는 것.
도노반은 잠시 생각하는 듯 보였다. 망설이는 것은 아니었다. 변호 제안을 들었을 때부터 이미 답은 내린 상태였다. 아벨을 변호하기로...
도노반은 스파이를 처음 변호하는 것 치고는 꽤나 자신감이 넘치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눈이 반짝였다. 정해진 결과일지라도 얼마든지 뒤엎겠다는 각오가 스쳤다. 루돌프 아벨을 만났다. 아벨은 스파이이기 이전에 한 나라의 국민이었고 멀리 타국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는 한 사람이었다. 도노반은 아벨과의 만남을 통하여, 그를 변호하는 것에 대한 명분과 확신을 얻었다. 적국의 사람일지라도 자신의 국가를 위해 헌신한 사람을 죽이는 것은 옳지 않다. 미국의 국민들이 미국을 지키고 싶어 하는 것처럼 아벨 또한 소련을 지키겠다는 마음으로 그저 열심히 했던 것 뿐이다.
타고난 달변가의 모 아니면 (빽)도
도노반은 말을 하는 데에 능숙하고 막힘이 없었다. 사람을 변호하고 변론함에 있어 최적의 조건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었다. 다년간의 보험관련 재판으로 다져진 능청스러운 화술은 그의 트레이드마크다.
변호사가 아니었다면 도박꾼이나 교주로 그 명성을 날리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뛰어난 촉과 담력을 자랑하며 거침없는 행보를 보인다. 주변 상황에 흔들리지 않으며 자신이 정한 목표와 신념에 대한 확신이 있고 그것에 순발력과 추진력이 더한다. 가령 도노반의 의견과 다른 노선이라고 하더라도 일단 그와 본격적으로 대화를 나누면 노선변경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정도.
상황 판단이 빠른 덕에 다소 즉흥적이긴 선택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신념을 지키는 것과 아벨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는 결코 변함이 없었다. 모 아니면 (빽)도인 상황에 보는 사람 조마조마하게 만드는 그의 선택적 능력이란... 물론 (빽)도는 나오지 않았다.
단조로움 속의 크레센도 (Crescendo)
'스파이 브릿지'의 첫 느낌은 단조로움이었다. 부산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시종일관 평온한 분위기의 유지에서 온 것이었다. 극적인 순간들도 있었지만 그것을 굳이 강조하지는 않는다. 그 또한 그저 흘러가는 어떤 순간일 뿐이다. 심각하기 위해, 위험하기 위해 애쓰지 않는 점이 좋았다. 그렇게 단조로움과 평온함을 유지하면서 영화는 시간이 흐를수록, 장면이 거듭될수록 감정을 점점 고조시켜나간다.
묘한 쾌감과 찡함 그리고 짠함이 어우러지는 절정부와 잔잔한 여운을 남기는 결말부. 잠이 올 것 같은데 눈이 말똥말똥해서 잠을 잘 수 없을 때가 있다. '스파이 브릿지'가 나에게는 그 때와 같은 영화였다. 졸린 것 같은데 졸리지 않은 영화. 처음엔 좀 멍한 상태였으나 갈수록 집중력을 발휘하고 있는 나를 볼 수 있었다.
'스파이 브릿지'는 냉전(冷戰)이라는 단어와 시대적 상황이 주는 차가움에 반(反)하는 따듯하고도 인간적인 영화다.
변론의 기회는 누구에게나 주어져야 합니다.
글 제공 : 키위의 블로그
http://blog.naver.com/duddjw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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