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이 남을 가능성이 없는 전시를 열려고 하지 않는 화상들에게는 '상업성이 곧 작품성'인 것이다. - p.36주류 미술의 미적, 경제적 합류가 이루어지면서 화가들의 그림을 구입해주는 화상의 존재는 무엇보다 중요해졌습니다. 피카소는 작가의 명성이 만들어지는 이면에는 평단의 인정과 상업적인 성공이라는 톱니가 맞물려 돌아가고 있다는 점을 완벽히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가난한 사람처럼 사는 부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던 피카소의 돈에 대한 욕망은, 작품의 예술적인 가치와 상업적인 가치의 조화를 훌륭하게 양립시켰습니다. 팔기 위해서 그린다고 공공연히 말하던 피카소는 미술품을 거래하는 화상과 적극적으로 손을 잡으며 성공을 거머쥐었고, 화상들은 작가들의 작품을 공급함으로써 미술 시장을 특정 화가 위주로 개편했습니다.
'아비뇽의 아가씨들'은 처음 공개되었을 당시, 브라크가 "이 그림을 쳐다보고 있으면 밧줄을 삼키거나 등유를 마시라고 강요당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라고 말했을 정도로 인정을 받지 못했던 작품인데, 브르통의 찬사 덕분에 상당히 비중 있는 작품으로 평가받게 되었다. - p.245성공한 미술계의 거장, 피카소를 만들어낸 마지막 주인공은 미술관이였습니다. 1930년대에 여러 미술관에서 열린 일련의 피카소전은 여러 면에서 피카소의 전속 화상이였던 로젠버그와 피카소가 10여 년 전부터 추진해 온 '피카소 홍보 프로그램'의 결정판이었습니다. 전세계 유명 미술관에서 이어지는 대규모의 피카소전은 대중들에게 현대의 미술 거장, 피카소라는 이미지를 각인시켜줬습니다. 이런 전시전은 사진 작가 브라사이가 표현했던 대로 일종의 신격화였습니다. 그런 이미지야말로 작가에게, 그리고 화상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다른 작가들에 비해 유독 화려했던 피카소의 성공은 이러한 미술 시장의 변화, 발전의 흐름을 완벽하게 주도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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