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에서 '케이팝 데몬 헌터스'라는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영화를 선보인다고 했을 때 '제정신인가, 돈을 하수구에 버릴 생각인가' 같은 생각을 한 사람이 기자만은 아닐 것이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 라는, 제목에 들어 있으면 왠지 작품의 신뢰도가 내려가는 느낌이 드는 단어 셋이 한데 모인 제목은, 소니와 넷플릭스가 '케이팝이 인기라고 하니 대충 묻어가는 작품 하나 만들어 볼까' 같은 생각으로 만든 작품일 것이라는 선입견을 주기에 충분했다.
케이팝 아이돌이 사실은 데몬 헌터고 낮에는 노래하고 밤에는 데몬과 싸운다고? ... 실제 작품을 감상하기 전까지 기자는 망작일 가능성이 120%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결론부터 적자면, 기자가 애알못이었다. 역사에 남을 걸작을 만들어 선사해 준 소니 픽쳐즈 애니메이션과 훌륭한 안목으로 걸작에 투자한 넷플릭스에 감사와 사과의 말을 전하고 싶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과거 디즈니가 가장 좋았던 시절 보여줬던, 심플하지만 감동을 주는 스토리와 메시지, 매력적인 캐릭터들, 긴장을 풀어주는 유머, 그리고 심금을 울리는 좋은 노래를 모두 갖춘, 오랜만에 만난 웰메이드 뮤지컬 애니메이션 영화였다.
고전을 답습하기만 한 것이 아닌, 케이팝 스타인 주인공들이 때로는 귀엽게, 때로는 우스꽝스럽게 망가지는 모습을 잔뜩 보여주고, 남의 조력을 통해서가 아닌 스스로의 주관과 힘으로 고난을 극복하고 나아가는 현대적 관점도 제대로 담아냈다.
시작부터 기강을 잡고 작품 내내 집중을 유지시키는 노래의 힘
소재가 케이팝 아이돌인 만큼 노래만큼은 괜찮은 결과물을 보여주지 않을까 했는데, 기대를 월등히 뛰어넘는 명곡들이 연이어 쏟아지는 작품이었다.
넷플릭스에 업로드된 당일 먼저 시청한 지인들이 하나같이 '의외로 괜찮다', '생각보다 볼만했다'고 해 '그럴 리가 없는데... 내가 직접 확인해 주겠어'라는 심정으로 퇴근 후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켰다. 게임을 하면서 적당히 보면 될 것이라는 생각에 플레이스테이션5 전원도 같이 켰는데...
일단 초반 왜 아이돌이 데몬 헌터인가를 설명하는 설정과 역사 부분에서부터 애니메이션 퀄리티와 묘사가 심상치 않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비행기 신...
'How It's Done'이 흘러나올 때 '아 대충 봐선 안 되는 작품이구나' 라고 바로 기강이 잡힌 기자는 플레이스테이션5를 끄고 정좌해서 작품을 시청했다.
두번째 흘러나온 곡 'Golden'에 압도되고 사자 보이즈의 'Soda Pop'에 실실 웃다가 'Free'에 가슴을 저미고... 'Your Idol'에 눈이 휘둥그래졌다가 'What It Sounds Like'가 흘러나오는 클라이막스에서는 눈물을 줄줄 흘리고 말았다.
이미 잘 알려졌듯 작곡부터 가창까지 실력있는 뮤지션들을 모아 만들어 부른 곡들로, 정말 빼놓을 곡이 하나도 없는 명곡 뿐이었다. 소니에서 'Golden'으로 아카데미 등 수상을 노린다고 하는데, 상을 많이 못받는다면 그게 더 놀라운 일이 될 것 같다.
노래의 리듬과 액션이 완전히 맞아떨어지는 애니메이션 연출도 정말 일품이었다. 이 정도까지 완벽하게 해낸 경우는 못본 것 같은데,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두고 '뮤지컬 액션 애니메이션'이라는 신장르를 개척했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일반 대중과 마니아를 모두 잡아끄는 고증과 디테일의 힘
대중 취향의 작품과 마니아 취향 작품은 대개 구분되어 인식되는데,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둘 모두에게 공감과 흥미를 소구하는 작품인 것 같다.
심플하지만 묵직한 메시지, 감동과 웃음을 주는 캐릭터들과 대사 같은 쉽게 파악되는 장점에 더해 극한의 디테일을 추구한 제작진의 노력이 기자와 같은 마니아 층에게도 크게 와닿은 것 아닐까 싶다.
한국인 애니메이터가 다수 포함된 제작진은 한국 로케이션 취재를 기반으로 한국인 애니메이터들의 검증, 보완 과정을 거쳐 한국 사람들이 봐도 '아, 이건 한국이다, 이것은 한국적이다'라고 느끼게 만들었다.
헌트릭스 루미, 미라, 조이가 달고 있는 노리개와 의상, 응원봉의 문양, 그녀들이 먹는 음식과 공연 장면 등 어느 곳 하나 대충 만든 느낌을 주는 곳이 없었다.
제작진은 한국인 비하로 한국에서 비난을 받을까봐 걱정했다는데, 주차금지 구역에 차를 대 둔 배경 묘사도 그저 한국 고증을 잘했다고 칭찬이 나올 뿐이다.(아직은 이 부분을 욕하는 사람은 못 본 것 같다)
한편으로 예산 문제로 묘사를 포기한 대목(목욕탕에 자리마다 거울을 넣고 싶었지만 예산 문제로 포기했다고 한다)도 있다는데, 조금 아쉽지만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대성공을 거뒀으니 차기작에서 그런 고증을 모두 반영한 결과물이 어떨지를 보고싶다는 생각도 든다.
속편은 나올 수 밖에 없고요... 프리퀄도 주세요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그야말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중이다. 넷플릭스에서는 '올드가드2'와 같은 기대작들이 나왔음에도 2주가 지난 지금도 영화 순위 1위를 유지하고 있으며, OST와 개별 곡들은 빌보드 차트, 스포티파이 차트 등에서 최상위권에 올라 음악 자체로도 큰 성공을 거뒀다.
해외 클럽들에서 '케이팝 데몬 헌터스' 노래를 틀면 바로 분위기가 달아오른다거나, 아이들이 보고 또 보는데 너무 많이 봐서 걱정이라거나, 코스프레, 곡 커버가 무수히 쏟아지고. 시간이 지나도 열기가 식기는 커녕 더 뜨거워지는 모양새다.
이렇게 성공한 작품이 속편이 안 나올 리는 없을 텐데... '케이팝 데몬 헌터스' 제작에도 참여했다는 애니메이터 '곰나' 님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애니메이터 곰나'에 출연한 소니 픽처스 애니메이션 박상욱 슈퍼바이징 애니메이터 또한 "2편이 무조건 나올 것 같다. 이렇게 잘됐는데 나와야 한다"며 "속편을 제작하지 않기에는 너무 잘 됐다"고 밝혀 속편에 대한 기대감을 키웠다.
팬들이 속편에서 '진우를 살려내라', '사자보이즈 다른 멤버들 사연도 보여달라', '미라, 조이 이야기를 더 달라'는 등 다양한 의견들을 내고 있는데 '케이팝 데몬 헌터스' 메가폰을 잡은 매기 강 감독은 "속편이 성사된다면 미라와 조이 이야기를 더 하고 싶다"는 의견을 밝힌 바 있다.
루미의 부모님 이야기, 먼 과거 선조 헌터들의 이야기 등 다룰 부분은 무궁무진해 보이고, 그저 소니가 힘내서 다음 이야기를 빨리 보여주기를 바랄 뿐이다.
한편 여느 케이팝 아이돌 그룹들처럼 헌트릭스 역시 팬들 사이에 '어느 곡에서 멤버 별 담당 비중이 너무 차이난다', '분량 배분 좀 잘해달라' 같은 요구들이 나오고 있는 상황인데...
기자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서는 극 후반 'Golden'을 루미 혼자 불러야 하고 'What It Sounds Like' 역시 루미 비중이 많은 것이 스토리 상 말이 된다고 생각해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속편에서는 미라와 조이에게도 제대로 파트를 배분해 주길 바란다.
'How It's Done'정도로 배분이 된 곡이 한곡 정도만 더 있었어도 불만들이 덜했을 텐데... 메인 래퍼인 조이의 랩이 제대로 나온 곡이 'How It's Done' 뿐이라는 점도 너무 아쉽다. 조이의 랩 실력이 제대로 발휘되는 곡도 꼭 주실 거라 믿습니다.
여기까지 와서 보니 소니가 '케이팝 데몬 헌터스'라는 제목을 영리하게 잘 지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제목만 보고 기대감을 한없이 낮추고 접근했다 실제 결과물에 놀라게 되는 그 격차가 매우 컸는데 그런 갭을 노린 것 아닌가 싶기도 하고, '케이팝 데몬 헌터스' 외에 이 작품을 나타낼 제목이 뭐가 있을까 생각하면 '케이팝 데몬 헌터스' 이상의 제목이 없다는 생각도 든다.
아니, 작품이 좋으니 꿈보다 해몽이 되는 것 같기도 하지만...
아직 안 본 독자가 있다면 어서 보길 바라고, 한번만 봤다면 2회차, 3회차 관람을 권하고 싶다. 기자는 5번 관람했는데 볼때마다 새롭게 보이는 디테일과 재미가 있었다.
21세기의 걸작 애니메이션을 한 손으로 꼽을 때 언급되는 작품들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월 E', 'UP', '라따뚜이', '겨울왕국' 등인데,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이들과 나란히 설 수 있는 걸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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