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획]가깝고도 먼 日 게임시장, '컬쳐라이제이션'의 의미를 되짚어보다

등록일 2017년10월18일 15시15분 트위터로 보내기


게임포커스에서는 매년 이맘때면 일본 게임시장의 현재를 돌아보는 기획기사를 준비해 독자들에게 제공해 왔다.

세계 3대 모바일게임 시장 중 하나인 일본은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나라이지만 '콘솔게임이 주류인 나라', '유저 성향이 우리나라와는 크게 다른 나라', 'PVP, 경쟁콘텐츠를 싫어하는 성향의 유저가 많은 나라' 같은 폐기처분되어야 할 낡은 선입견들이 눈과 귀를 막아 왔다.

많은 국내 게임사가 일본시장 공략을 위해 게임을 출시하고 지사를 설립했지만 오랫동안 눈에 띄는 성적을 내는 게임이 나오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그런 상황에서 넷마블이 '세븐나이츠'와 '리니지2 레볼루션'으로 연이어 좋은 성적을 내자 일본시장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지고 있는 상황.

몇해 전 글로벌 시장 공략을 선언한 넷마블이 가장 먼저 공을 들여 성과를 낸 건 이웃나라 일본의 모바일게임 시장이었다. 2016년의 '세븐나이츠'와 2017년의 '리니지2 레볼루션'은 라인 등 플랫폼을 거치지도 않고, 일본인들에게 친숙한 IP에 기대지도 않으면서 넷마블의 운영, 마케팅 노하우와 게임 자체의 힘만으로 일본 시장에서 이제껏 한국을 비롯해 해외게임사들이 이루지 못한 성과를 냈다.


특히 '리니지2 레볼루션'이 매출순위 1위에 오른 건 일본 게임업계에도 적잖은 충격을 안겨줬다. '리니지2 레볼루션'의 1위 등극 후 일본 모바일게임 마켓 최상위권 게임들의 이벤트, 픽업가챠 빈도 및 강도가 매우 거세졌고 게임 내 재화를 푸는 것에 인색하던 게임들이 전보다 더 많은 재화를 제공하게 되었다는 건 일본에서 활동중인 한국 게임사 관계자들은 물론 일본 게임사 관계자들도 수긍하는 분위기다.

한국 게임사들은 21세기 들어 일본 게임시장의 문을 꾸준히 두드려왔고 특히 스마트폰 게임 시대가 된 후에는 낮아진 장벽의 영향도 있어 진출이 매우 활발했다. 하지만 뚜렷한 성과를 낸 케이스가 없던 상황에서 넷마블의 이런 성과는 주목할만 하다.

2018년 일본 게임시장에 복수의 대작 타이틀을 출시할 예정인 넷마블은 물론 '데스티니 차일드'로 일본 공략에 나선 스테어즈(넥스트플로어 일본법인)는 일본 시장에서 매출순위 1위에 오르겠다는 목표를 자연스럽게 공개하고 있는데, 이 역시 예전같으면 상상하기 힘든 일.

넷마블은 일본 시장에서의 성공을 위해 단순 언어번역 차원을 넘어 일본에 맞게 게임 디자인의 기본 구조를 뜯어고치는 '컬쳐라이제이션'을 진행하고 있다. 반년에서 길게는 1년 가까이 걸리는 이 작업은 사실상 일본 시장을 위해 새로운 게임을 하나 만들어내는 과정에 가깝다. 스테어즈와 넥스트플로어 역시 데스티니 차일드를 일본 시장에 맞게 재디자인하는 과정을 오랫동안 거쳤다는데...

일본 시장을 지켜봐 왔고, 지금도 일본 시장에서 뛰고있는 이들에게 '컬쳐라이제이션'이 어떤 작업인지를 들어보고 일본 시장에 대해 가진 낡은 선입견을 버려야 한다는 조언과 함께 정리해 봤다.

로컬라이제이션은 컬쳐라이제이션이 아니다
컬쳐라이제이션(culturalization, 문화화)이란 단순히 언어와 용어를 바꾸는 로컬라이제이션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모든 부분을 해당 나라, 문화권에 맞추는 걸 의미한다. 사소해 보이는 생활상, 근로상의 작은 차이를 고려해 게임의 근간을 바꿔야하는 작업으로 모두 말로는 컬쳐라이제이션을 이야기하지만 쉽게 하지 못하는 건 쉬운 작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개 한국식 모바일게임은 자는 시간을 제외하면(혹은 자는 시간에까지) 늘 게임을 켜 놔야 하고 자주 들여다보고 관리를 해 줘야한다. 직장인들이 게임을 실행해 두고 한번씩 터치해주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며 플레이시간은 매우 많이 요구하지만 대부분을 자동으로 수행해 주고 조금씩 관리만 해 주면 되기에 부담이 적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직장인들이 근무시간 중에 게임을 하는 게 한국처럼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 사무직도 그렇지만 특히 서비스업이라면 출근 후 전화기는 사물함에 보관하고 점심시간 및 퇴근 후에나 다시 들여다보게 되는 게 보통이다.

당연히 유저들에게 끊임없는 플레이를 강요하는 게임디자인은 받아들여지기 힘들다.


"일본에 게임을 제대로 서비스하고자 한다면 유저들의 플레이 사이클, 밸런스 등에서 근본적인 변경이 필요합니다. 유저들이 게임을 즐기는 사이클이 몇 시간이고 켜둔 채 반복플레이를 하도록 하면 안 되고 매일 원할 때 조금씩 플레이하며 성취할 수 있는 일일 콘텐츠와 주 단위 이벤트로 목적을 달성하고 보상을 획득하는 구성으로 게임을 디자인해야 합니다.

끊임없이 플레이해야 하도록 강요하면 재미를 못 느끼고 스트레스만 받게 됩니다. '데스티니 차일드' 일본 버전의 경우에도 그렇게 변경해서 유저들이 하고 싶어 켰을 때 10분이건 1시간이건 플레이하고 꺼도 되면서, 매일매일 할 거리를 제공하도록 콘텐츠 구성을 바꿨습니다"

'데스티니 차일드'로 일본 모바일게임 시장 매출순위 1위를 노리는 스테어즈 전인태 대표의 말이다.

'일본 유저는 이렇다'는 선입견을 버리자
앞서 언급했듯 일본의 직장인들은 근무시간에 게임을 플레이하지 못하는, 혹은 안하는 게 보통이다. 그렇다보니 일본 유저들이 주로 게임을 플레이하는 건 이동 시간, 점심시간, 퇴근 후 시간 등으로, 게임을 플레이할 때 집중해서 하게되는 경우가 많을 수 밖에 없다.

그렇게 게임에만 집중해서 플레이할 때 오토플레이를 켜두고 바라보는 것보다 직접 조작해 플레이하는 걸 선호하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일본 유저들의 성향이 오토플레이를 선호하지 않고 조작감을 느끼고 싶어한다기보다 환경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라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직장인이 아닌 여유가 많은 유저의 경우 오토플레이를 선호하는 경우도 늘고 있고, 직장인들도 자주 관리해줄 필요가 없는 게임이라면 실행해 두고 점심시간에 꺼내보는 게 가능하다.


"요즘 나오는 신작들을 보면 오토 기능이 들어가지 않는 게임을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게임을 만드는 입장에서도 그걸 원하는 유저들이 있다는 걸 파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일본 유저들은 오토를 싫어할 것이다. 경험적으로 그렇다'라고 생각하는 건 낡은 생각입니다.

정말 그런지는 유저들에게 물어보고 확인해 봐야 하는 것이죠. '일본 유저들은 PVP를 싫어한다'는 선입견도 있는데 그것 역시 물어보고 확인해 봐야하는 부분입니다, 바뀌었을 수도 있고 애초에 그렇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넷마블 재팬을 이끌고 있는 김태수 대표의 생각이다.

확실히 예전에는 일본 유저들이 오토플레이를 좋아하지 않았을 것 같다. 콘솔게임 시장이던 시절 말이다. 집중해서 플레이해야 하는 콘솔게임을 오토로 플레이하는 건 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바일게임은 반복플레이가 굉장히 많이 필요하다. 이런 플랫폼, 장르적 특성 하에서 오토플레이를 갈수록 단순 편의기능 정도로 받아들이는 유저가 늘고 있다는 것이 김태수 대표의 해석.

"오토가 있느냐 없느냐는 게임의 밸런스 문제에 불과합니다. 없어도 되는 게임이면 없어도 되고, 있어야 하는 게임이면 있어야 하는 것이죠.

한국게임들의 특징이 반복플레이를 좀 많이 요구한다는 겁니다. 일본게임들보다 반복 요소가 좀 많지 않나 하는 느낌을 받습니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오토플레이가 있는 편이 한국게임을 더 수월하고 재미있게 할 수 있게 해 준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오토플레이가 없어도 게임을 즐기는 데에, 밸런스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는데 굳이 오토플레이를 넣을 필요는 없을 겁니다. 오토플레이가 무슨 최첨단 기술도 아니고 그저 편의기능일 뿐이니까요. 그게 필요하면 넣는 것이고 필요거 없다면 안 넣어도 되는 겁니다"

일본 유저들은 PVP를 싫어한다고?
PVP 역시 마찬가지다. 일본 유저들은 경쟁 콘텐츠, PVP를 싫어한다는 선입견이 오래도록 남아있지만 그렇다면 일본이 격투게임 종주국이 된 이유를 뭐라 설명해야 할까. 콘솔 FPS게임 멀티플레이를 즐기는 유저가 굉장히 많다는 등 다른 결론을 도출할 정보 역시 잔뜩 있다.

일본 유저들이 PVP를 싫어한다는 선입견은 한국 유저들이 즐기는 PC 온라인게임을 일본 유저들이 즐기지 않기 때문에 생긴 것 아닐까 싶다. 단순히 PC 플랫폼을 건너뛰고 모바일로 바로 가버린 일본의 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PVP를 좋아하지 않아서 MMORPG나 MOBA를 즐기지 않는다는 편한 답으로 가버린 것 아닐까.

일본에서 PC는 업무용으로 사용되는 게 대부분으로 개인이 PC를 사용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그런 탓에 일본에서는 '앱플레이어'라는 개념도 일반적이지 않은데, 일본 게임업계 관계자 중 '블루스택'이 뭔지 전혀 모르는 사람이 아는 사람보다 월등히 많은 게 현실이다.


하지만 모바일게임에서는 비동기 순위경쟁이나 PVP를 열성적으로 즐기는 모습이 오래전부터 관측되어 왔다. 예를 들어 모바일 MOBA의 대표주자인 '베인글로리'의 경우 한국 유저보다 일본 유저들이 랭킹전을 훨씬 많이 즐기는 것으로 나타난다.

"의외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한국 유저들은 경쟁전을 즐기는 빈도가 높지 않습니다. 그런데 일본은 랭크매치를 하는 비율이 매우 높습니다. 경쟁적인 플레이를 즐길 것이라 생각한 한국 유저들은 랭크매치를 즐기지 않고 반대로 생각한 일본 유저들은 활발하게 즐긴다는 결과가 나오는 것이죠.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를 생각해 보니 추측의 영역입니다만, 한국 유저들은 잘 하는 유저만 경쟁전을 하는 것 같습니다. 잘하는 유저들이 더 잘하고 이기기 위해 참여해 빠르게 성장하는 것이고 일본 유저들은 참여해 경쟁하는 자체에 의미를 둬서 잘하건 못하건 참여를 하는 것 같습니다. 못하면 더 노력해야지 하고 들어가서 랭크매치에 참여를 더 많이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한국 유저들은 승리를 즐기고, 일본 유저들은 경쟁 자체를 즐긴다는 '베인글로리' 개발사 슈퍼이블 메가코프의 윤태원 글로벌 퍼블리싱 총괄의 말은 설득력이 있다.

막연한 추측보다 확실한 분석과 연구를
일본 유저들에 대한 대표적 선입견, '일본 유저들이 오토플레이를 싫어한다'는 선입견과 'PVP를 선호하지 않는다'는 선입견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 외에도 일본 유저, 일본시장에 대해 한국 게임업계가 갖고있는 막연한 선입견은 더 있을 것이다.

시장조사와 연구를 통해 일본 시장, 유저에 대한 정보를 갱신해 그런 선입견을 정확한 현상과 분석으로 바꿔야 한다. 연구에 더 공을 들여 제대로 준비한 게임사라면 일본 시장에서 제대로 된 성적을 낼 수 있다는 게 증명된 이상 이제까지의 주먹구구식 접근법은 지양해야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기자의 경험을 소개하며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기자가 10년쯤 전 도쿄게임쇼 취재에 처음 갔을 때의 일이다. 게임쇼 첫날 일정이 다 끝난 뒤 행사장에 남아 기사를 작성하던 기자는 프레스룸 운영시간이 끝난 후 행사장 건물 휴식공간에서 노트북을 충전하며 기사를 작성하고 있었다.


그 때 멀리서 기자의 그런 모습을 본 경비원이 달려와 '전기도둑질을 중단하라'고 이야기했다. 이 때 알게된 것이, 일본에서 남의 전기를 몰래 쓰는 것은 엄연한 절도로 처벌대상이며 공공장소는 물론 카페 등에서도 충전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근래에는 충전을 제공하는 카페도 생긴 모양이지만 오래도록 충전은 호텔과 프레스룸에서만 가능한 것이었다. 캡슐호텔 중에는 전기 콘센트를 제공하지 않는 곳도 있고, 전기세를 따로 청구하는 숙박업소도 있을 정도라 일본에 갈 때면 늘 보조 배터리 등을 넉넉히 챙겨가는 게 습관이 되었다.

당시 경비원은 기자가 외국에서 와 사정을 몰랐다는 점을 감안해 원만하게 넘어가줬지만, 이 때의 경험은 평소 하던대로, 갖고있던 상식대로 행동하는 게 해외에서도 그대로 통하지 않는다는 교훈을 줬다.

단순히 취재, 관광을 갈 때에도 문화적 차이, 사고방식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일본에서 사업을 해 돈을 벌려는 게임사들이라면 한국에서 만든 게임을 그대로 출시한다는 결정을 내리기보다 게임디자인의 핵심적인 내용까지 고쳐서 일본의 문화와 생활양식을 고려한 게임이 될 수 있도록 제대로 준비해야 할 것이다.

그 동안 모두가 컬쳐라이제이션을 외쳤지만 실제로는 로컬라이제이션에 그쳤던 게 사실이다. 컬쳐라이제이션을 거친 후에야 게임성으로 승부를 본다는 말이 통할 수 있다. 이제는 진짜 의미 그대로 컬쳐라이제이션을 실행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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