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심리학으로 풀어본 '너의 이름은.', 심리요법과 자아동일성통일

등록일 2017년02월09일 12시20분 트위터로 보내기


* 본 기고는 일본의 심리학자인 토키타 켄이치씨가 보내온 것으로 한국 독자들을 위해 본지가 번역을 통해 한국 독자들에게 제공합니다.

'너의 이름은.'을 다시 관람하고 왔습니다. 처음 보러갔을 때 상영관에 20여명이 봤던 것에 비해 이번에는 심야상영이었음에도 거의 만석이었습니다.

 

다시 봐도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기후현 히다지역의 사투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히다 지역민인 제가 위화감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제대로 된 사투리 표현이라고 느꼈습니다. 사투리 감수를 제대로 한 것이겠지요.

 

그건 그렇고, 저는 2번째 이 영화를 보고 '왜 처음 봤을 때는 눈치채지 못했을까'라는 후회를 했습니다. 첫 관람 시에는 흐응~ 정도의 느낌으로 봐 버렸습니다만, 2번째 보고 다양한 재발견이 있어 울면서 보게 됐습니다. 첫 관람 때 아무 생각 없이 봤던 스스로를 반성했습니다.

 

'너의 이름은.'은 심리구조부터 복선까지 훌륭한 완성도의 작품이었습니다.

 

첫번째로 주목할 부분은 등장인물의 심리적 배경과 '왜 두 사람이 바뀌었는가'에 대한 것, 두번째는 주목할 부분은 그 치료방법에 대한 부분입니다.

 

'중학생인 타키 군이 전혀 모르는 사람인 미츠하와 만나 헤어지는 장면에서 매듭끈을 넘겨받을 때까지'의 '기적'. 미술, 작화가 훌륭하다거나 언제 몇 번 바뀌었나 같은 표면적인 이야기가 아닌 그 뒤에 가려진 부분을 해설해보려 합니다.

 

'너의 이름은.'의 심리적 구조와 타키와 미츠하가 바뀌는 이유
타키와 미츠하에게는 심리학적으로 명확하게 공통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타키도 미츠하도 모두 '어머니가 안 계신다'는 점으로, 심리학에서 말하는 '모친상이 내재화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어린 시절 어머니가 돌아가신 탓에 '어머니라는 존재가 어떤 것인지 모르는 상태'입니다.

 

심리학자 하인츠 코헛은 어머니의 역할을 '공감의 거울'이라고 했습니다. 공감의 거울이란 '어떤 일이건 내 편이 되어 공감해주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역할은 '이상'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상이란 '인생이란 이런 것이다'라고 이상(목표)을 제시해 주는 인생의 나침반과 같은 존재를 가리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라고 했지만, 이 거울과 이상의 역할을 하는 것은 어느 쪽이든 상관이 없습니다. 친어머니, 여자, 친아버지, 남자와 같은 혈연이나 성별 부분은 엄밀히 말해 관계가 없습니다. 이웃집 아저씨나 아주머니라도 상관이 없고, 친구라도 문제가 없습니다.

 

이 거울과 이상이라는 2가지 역할을 내재화하는 것으로 스스로를 이루는 '자기'가 성숙해, 심리적으로 안정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심리학 이론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거울과 이상이 결여된 아이는 어떻게 될까요?

 

'공감'의 역할이 없는 사람은 '이상은 높지만 내용은 비현실적인, 행동도 경쟁적이고 공격적이라 공감하기 힘든' 성격의 사람이 많습니다. '이상'의 역할이 없는 사람은 공감이 가고 상냥하지만 행동력이 부족한, 현실적이지만 약한' 성격이 많습니다.

 

'너의 이름은.'으로 돌아와 타키의 경우를 보면, 타키의 경우 어머니는 안 계시지만 아버지는 계십니다.

 

타키는 '이상은 있어 남자답다'는 느낌을 주지만 친구들의 권유를 거절하고 아르바이트에서 삶의 보람을 찾는 등 공감능력은 조금 부족한 모습을 보입니다. 하지만 타키는 가정 내에서는 아버지를 위해 살림을 하는 등 '어머니의 역할'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미츠하는 어떨까요?

 

미츠하의 경우에도 어머니는 안 계시지만 아버지는 계십니다. 정확하게는 어머니(후타바)에 대한 기억은 어린 시절 어머니가 돌아가신 탓에 거의 없는 상태입니다. 하지만 대신 할머니 밑에서 성장했으므로 어머니의 역할(공감능력)은 갖추고 있습니다.

 

성격 면에서도 미츠하는 타키와 비슷한 면을 보입니다. '이상의 역할이 있어 남자답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꼬여있긴 해도 미츠하에게도 아버지 역할의 존재가 있기 때문입니다.

집에서 미츠하 본인은 공감(거울) 역할을 담당하고 있지만, 실제 어머니에 대해선 잘 모르는 상태입니다.

 

공통점은 두 사람 모두 어머니가 안 계시다는 '한 쪽이 빠진 조각'(片割れ, 카타와레)이라는 것입니다. 가정 내에서 '어머니의 역할'을 맡고 있다는 점도 그렇습니다.

 

두 사람의 차이점은 부친상에 있습니다.

 

미츠하의 아버지는 살아 있습니다. 하지만 불화가 있어 관계가 단절되었습니다. 이 부분만은 타키와 정반대 상황인 것입니다. 타키는 아버지와 사이좋게 지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안 계십니다.

 

미츠하는 아버지와 사이가 나쁩니다. 하지만 대신 할머니가 계십니다. 이렇게 서로에게 부족한 부분이 두 사람이 바뀜으로써 보완되는 것입니다. 한 쪽이 빠진 조각(片割れ, 카타와레)이라 분열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타키와 미츠하는 한 쪽이 빠진 존재였기에, 고등학생이 되어 성격 분열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너의 이름은.'은 두 사람에게 해리성동일성장애(다중인격) 증상이 나타나는 스토리로 진행이 됩니다. 타키와 미츠하는 각각 다른 인격에 대해 기억하곤 있지만 통합은 되지 않는 상태입니다.

 


 

모친상을 잃어버린 두 사람이기에 오쿠데라 선배에게 모친상을 투영하는 것도 같습니다. 둘 모두 오쿠데라 선배를 좋아하게 된 것이죠. 영화의 스토리상 미츠하가 중학생이던 타키를 전철에서 만난 그 때 타키는 연상을 좋아하게 되어버렸다고 해석할 수도 있겠습니다.

 

미츠하의 입장에서는 아버지와의 갈등이 점점 강해지는 상황에서 타키를 받아들여 남성성(부성성, 이상)을 내재화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전혀 의미가 없는 뒤바뀜이 아니라 심리학적인 의미가 있는 뒤바뀜이었던 것이죠.

 

자아통일을 위한 심리요법으로서의 퇴행최면
타키가 사당에서 구치카미사케(무녀 입 술)를 마시고 그 자리에서 넘어지는 장면. 거기서 아름다운 추상적인 묘사가 극중 그려집니다. 그것은 과거퇴행 최면요법을 묘사한 것입니다.

 

그 장면에서 혜성이 갈라지는 것을 영혼이 분리되어 생명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묘사해, 타키의 몸으로 미츠하의 정신을 과거퇴행시켜 미츠하의 인생을 재체험시킵니다. 생명의 탄생, 탯줄 자르기, 운명의 빨간 실을 암시적으로 묘사해 가는 신이 이어집니다.

 

왜 이런 퇴행최면치료가 필요했을까. 테마곡의 제목이 '전전전세'(前前前世)라거나 삽입곡 중 '풍요의 춤'(豊饒舞)이 있다는 것에서 눈치챘어야 하는 부분입니다.

 

이 작품은 해리성동일성장해를 전세요법(과거퇴행최면)에 의해 치료하는 것이 테마가 되어 있습니다.

 

퇴행최면에서 환생, 깨달음(唯識)으로 전개되는, 미시마 유키오가 법상종의 깨달음을 담아 쓴 '풍요의 바다'(豊饒の海)가 바탕이 되어 있습니다.

 

삽입곡 풍요의 춤의 원 소재는 미시마 유키오의 풍요의 바다입니다. 풍요의 바다는 법상종의 유식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작중 윤회전생을 거듭한 주인공이 도중에 '꿈이라도 꾸고 있었던 건가'라고 부정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이 비슷한 대사가 영화에도 등장합니다.

 

또 한가지, 이나가키 카츠미(* 일본의 최면요법 전문가)의 환생과 전세요법에 대한 책, 기사도 영향을 끼쳤을 겁니다.

 

오컬트 잡지 '무' 애독자로 알려진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라면 이나가키씨의 책을 읽어봤을 가능성이 큽니다. '너의 이름은.' 기획, 제작과정을 전후해 '무'에서 특집으로 다뤄진 환생, 전세요법에 대한 기사는 이나가키 카츠미씨 뿐입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이나가키씨가 제시한 영혼의 미러홀 가설을 자신의 세계관에 끌어들인 것으로 보입니다.

 

영혼의 미러홀 가설이란 '영혼의 표층에는 다면적인 전세의 인격이 잠들어 있다'는 것으로, 과거퇴행을 통해 전세를 알게 됨으로써 현재의 심리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이나가키씨의 주장입니다.

 

'너의 이름은.' 초반에 텟시가 '월간 무'를 한 손에 들고 '아카식 레코드'니 '에버렛 다세계해석'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장면이 나오죠. '월간 무'는 영화 '너의 이름은'의 스폰서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사실 건설사 사장의 아들이자 무의 애독자라는 점 등을 보면 텟시는 신카이 감독 본인을 그대로 그려낸 캐릭터에 가까울 것입니다. 감독 본인도 텟시에 대해 자신의 학생 시절 그대로의 캐릭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타키와 미츠하는 뒤바뀜을 통해 절망적인 미래를 보고, 그것을 피하기 위해 구치카미사케로 과거퇴행 최면을 행해 환생, 미래를 바꾸는 데 성공한다는 것이 '너의 이름은.'의 근간을 이루는 스토리인 것입니다.

 

퇴행최면의 리얼리티
퇴행최면 중에는 기억이 분산 보존되어 그 분산된 기억을 재결합해 진짜같은 리얼리티를 재현하게 됩니다. 타키는 구치카미사케를 마심으로써 미츠하의 기억을 한번 리셋해 조각난 기억을 재결합해 자신 안에 받아들입니다.

 

한편, 타키에게 받아들여진 미츠하의 체험은 이미 타키에겐 자신의 체험이 되어버리므로 '잊어버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두 사람이 각각 직소 퍼즐을 맞추고 있다고 해 봅시다. 내 퍼즐의 조각 하나가 상대방의 퍼즐 조각에 섞여버리면 두 사람 모두 퍼즐을 완성할 수 없게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두 사람 모두 지금까지 만든 퍼즐을 일단 해체, 리셋해서 둘이 함께 2개의 퍼즐을 완성하려고 합니다. 이것이 '재결합'입니다. 최종적으로 각각의 퍼즐을 모두 맞추게 되는 것이 '기억이 통합되어 자신의 체험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카레다레도키(彼誰時, 여명 혹은 황혼을 뜻하는 말 중 하나)입니다.

 

'너의 이름은.'에서는 이토모리 마을의 사투리라는 설정으로 이 시간대를 가리키는 말로 '카타와레도키'라는 기후현 히다지역 사투리를 갖다 씁니다. '카타와레'(片割れ), 타키와 미츠하가 잃어버린 자신의 카타와레를 찾는 이야기라는 걸 상징하는 대목입니다.

 

타키와 미츠하는 남성성과 여성성을 각각 잃어버린 '한 쪽이 빠진 조각'(片割れ, 카타와레)라는 공통점 하에 뒤바뀌고 퇴행최면을 거쳐 자아통합해 성장하게 되었다고 정리할 수 있는 자아동일성 확립에 대한 이야기인 것입니다.


글- 토키타 켄이치(時田憲一, 일본의 심리학자이자 카운셀러, 웹사이트 '리버테리안 심리학 연구소' 운영자)

번역 및 정리- 이혁진 기자


君の名は。はなぜ癒やされるのか?~心理療法と自我同一性統一~

君の名は。を2度視聴しました。一週目は昼間行って20人くらいだったのに、今回はレイトショーでもほぼ満席でした。

相変わらず最初から最後まで一貫して、岐阜県の飛騨の方言でした。私の地元すぎて違和感を感じないくらいしっかりした訛(なま)りだと感じました。監修がしっかりしているのでしょう。

さて私は2回目の視聴で「何で今まで自分は1回目で気付けなかったのか」と後悔しました。

1回目はふーんくらいに乾いて見てしまったのに、2回目みて色々再発見して泣いてしまいました。1回目の時は何も考えてなかった自分を反省しました。

これは心理構造から伏線まで見事な作品なのです。

一つ目に登場人物の心理的背景と「なぜ入れ替わったのか?」ということ。二つ目にその治療方法です。

「中学生の瀧君に三葉が戻って電車の別れ際に組紐を渡す」までの「奇蹟」。「美術がきれいだなー」とか「いつ何回入れ替わったのか」などの表面的な話なの置いておいて裏の話を解説します。

心理学的に確実に二人が共通していることがあります。それは瀧も三葉も2人とも「母親がいない」ことです。心理学では「母親像が内在化されてない」。

簡単に言うと、乳幼児期に母親が亡くなっているので「お母さんという存在がどういうものか分からない」のです。

心理学者ハインツ・コフートによれば、母親の役割は「共感の鏡」(ミラー)と言われています。「共感の鏡」(ミラー)とは、「どんなことにも味方になってくれて共感してくれる」ことです。

逆に父親の役割は「理想」と言われています。「理想」とは、「人生とはこういうものだ」と理想(目標)を示してくれる人生の羅針盤的存在です。

この「鏡」と「理想」の役割をするのは誰でも良いです。母親は女だから、父親は男だからとか性別は厳密には関係ありません。近所のおじさんでもおばさんでも隣の人でも友人でも良いです。

「鏡」と「理想」この2つの役割があることで、中核的な自己が成熟して心理的に安定した大人に成長できると心理学では考えます。

逆に「鏡」と「理想」が抜け落ちた子がどうなるかのでしょうか?

「共感」の役割がない人は「理想だけは高いけど内容は非現実的。行動も競争的で攻撃的すぎて共感できない。」という性格の人が多いです。「理想」の役割がない人は「共感的でやさしいけど行動力にかける。現実的だけど弱々しい。」という性格の人が多いです。

瀧君の場合はどうでしょうか?

瀧君の場合、母親はいませんが父親はいます。瀧君は「理想はあって男らしい」ですが、友人を断ってバイトに生きる意味を見出したりと仲間を思う共感能力は低いです。しかし瀧君は、家庭内で父親のために家事をしたりと「母親的な役割」を担っています。

三葉ちゃんの場合はどうでしょうか?

三葉ちゃんの場合も、母親はいませんが父親はいます。正確には「母親(二葉)の記憶」は、乳幼児期に死に別れているので「ほぼありせん」。しかし、代わりにおばあちゃん(一葉)の下で育っているので母性性(共感能力)は持ち合わせています。

性格も瀧くんと共通しています。「理想はあって男らしい」のです。これは曲がりなりにも父親が存在しているためです。しかし「母親的な役割」(共感役割)は担っているものの、実際の母親は知らないのです。

共通点は二人とも「母親がいない」という「カタワレ同士」なのです。家庭内で「母親の役割」の役割を引き受けさせられています。

瀧君と三葉ちゃんの違いは父親像にあるのです。

三葉ちゃんの父親は生きています。しかし確執があり関係断絶しています。(民俗学者→宮司→妻が死んで政治家という経歴)

ここだけ瀧くんとは正反対です。瀧君は父親とは仲良くやっています。しかし母親はいません。

三葉ちゃんは父親と仲悪いです。しかし代わりにおばあちゃんがいます。

瀧くんと三葉ちゃんは「カタワレ」だったので、高校生になって性格分裂してしまいました。それが解離性同一性障害(多重人格)として表出するストーリーになっています。

それぞれの別の人格のことは覚えてはいますが統合は出来ていないという状態です。(実際に重度な症例だと前の人格のことも覚えていません。)

母親像をなくした二人だからこそ、二人とも奥寺先輩に母親像を投影したわけです。二人とも奥寺先輩を好きになってしまったのです。

ストーリー上では、元から三葉ちゃんが中学生の瀧君に電車で会っているのでその時にお姉さん好き属性を植え付けたとも解釈できます。

特に三葉ちゃんは父親との確執が強かったので、瀧君で男性性(父性性)を内在化させる必要があったのです。まったく意味のない入れ替わりでななく、心理学的に意味ある入れ替わりだったのです。

瀧君が岩の口噛み酒を飲んで、その場で転倒し、美しい抽象的な表現描写が劇中で入ります。あれは「過去退行催眠療法」です。

その場面では、彗星が分かれたのを魂のソウルメイトのように(そもそも糸森は隕石で誕生した)描写し、瀧の体で三葉のメンタルを過去退行させて人生を再体験します。

生命の誕生、へその緒、運命の赤い糸と暗喩的に描写して行くシーンがあります。

なぜこんな退行催眠治療する必要があったか。

テーマ曲の「前前前世」。挿入歌の「豊饒の舞」で気付くべきでした。この作品は「解離性同一性障害」を「前世療法(過去退行催眠)」によって治療することがテーマとなっているのです。

元は退行催眠→生まれ変わり→唯識へと展開していく三島由紀夫の法相宗の唯識「豊饒の海」が根本にあります。

挿入歌の「豊饒舞」の元ネタは三島由紀夫の「豊穣の海」です。「豊饒の海」は、法相宗の寺の唯識論(種子が薫習して生まれ変わる)の話です。

輪廻転生を繰り返す主人公に対して、途中で「夢でも見ていたのか」という否定に入るどんでん返しがあります。この「夢でも見ているのか」というセリフも、三葉ちゃんのおばあちゃんの「あんた今、夢を見とるなぁ」というセリフと同じです。

もう一つ、君の名はで元ネタに使った本だと確信したのは稲垣勝巳氏の著書です。「ムー」好きな新海監督が100%読んでいた本だと思います。

映画企画・制作期間の前後の月刊ムーで「前世療法」で特集されたのは稲垣勝己氏しかいません。間違いなく新海監督は世界観に取り入れました。

この著書の中での「魂のミラーボール仮説」です。「魂の表層に多面的に前世人格が貼り付いている」という仮説を稲垣勝己氏は前世療法の中で見出しています。

稲垣勝巳氏によれば魂の表面にいろんな過去の人格が貼り付いているとしています。それを過去退行によって知ることで今の心理的問題が解決できるというのです。

実際に、君の名はの映画の序盤ではテッシが「月刊ムー」(そもそも君の名の映画のスポンサーです)を片手にアカシックレコードとエヴェレット多世界解釈を冗談交じりに語るシーンがあります。

てっしは土木建設社長の息子でムー愛読者。これは新海監督本人の学生時代まんまの人物だと本人も言っています。

入れ替わりつつ、お互いに絶望的な未来を見て、それを回避するために口噛み酒で過去退行催眠して生まれ変わり、未来を変えるというのが君の名はの真のストーリーなのです。

退行催眠のリアリティ
退行催眠中は、記憶がバラバラに保存されており、それを再合成させて本物そっくりのリアリティを再現します。

瀧君は三葉ちゃんの記憶を口噛み酒を飲むことで一度リセットし、バラバラのところから再合成させて自分の中に取り込んだのです。一方で「瀧君に取り込まれしまった三葉ちゃんの体験」は、すでに瀧君にとっては「自分の体験」となるので「忘れるしかない」のです。

例えるなら2人がそれぞれで自分のパズルの作品を作っていたとします。しかし自分のピースが一部、相手のピースに混ざっていました。これではお互いにパズルを完成することができません。

なので二人とも一度、今まで作ったパズルを壊してリセットし、2人で2つのパズルを完成させようとするのです。これが「再合成」です。

最終的にお互いにパズルのピースの埋め合わせをしたので、「統合されて自分の体験となった」ということです。

まさに「彼誰時」(かれだれどき)です。

糸守町では方言でこの時間帯を「カタワレ時」という岐阜飛騨弁の方言設定を利用して「カタワレ(片割れ)」。つまりお互い「失った母親の片割れ」。

男性性と女性性を失った片割れ同士なので、入れ替わって退行催眠して自我統合して大人になった。という自我同一性確立の話なの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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